거룩한 생활의 의미와 자태

무엇이나 주를 위하여 한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출애굽기를 배우면서 생각한 대로 거룩한 위치에 서 있는 생활입니다. 어떤 위치냐 하면 주를 위하여 사는 인생의 위치입니다.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그 뜻을 위해 우리를 세상에서 뽑아내사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으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13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6:18에도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셨다는 사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 베드로전서 1:15-16에서는 레위기 11:44을 인용하여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생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우리가 중요히 생각할 말씀으로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저녁에 배운대로, 이스라엘이나 교회를 선택하신 큰 이유와 목적을 생각할 때에 항상 이 거룩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을 가르칩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따로 있는다’는 말이고 또 도덕적인 부정(不淨) 가운데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 이것이 거룩하라는 말씀입니다 –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7-18). 이 말씀의 큰 뜻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느냐 하면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 6:14上)는 말씀으로써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고후 6:14下-18). 이 말씀이 중요한 말씀들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신자의 생활에 첫째로 중요합니다.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내시사 시내 산 밑에 오게 하신 다음에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신 큰 이유를 말씀하신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첫째는 너희는 내 소유이고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또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을 신약에 와서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전서 2:9에서 꼭 같은 말로 우리에게 반복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 된 백성이니.’’ 그렇게 신자의 생활의 위치를 주신 동시에 그 다음에 오는 중요한 문제는 거룩한 백성이니까 거룩히 살아야 하는데 거룩히 사는 것은 뭐냐 할 때 첫째로 제일 중요한 문제는 항상 구별되어 있어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탄의 권세하에 있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그 어둠의 권세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신 사람들인 까닭에 그렇습니다. 또 우리를 택하사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까닭에 그렇습니다.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에 있는 사람은 과거에 노예 상태 가운데 있던 그 나라의 멍에를 같이 메고 나가지 않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모든 말씀들에서 우리가 명백하게 간취(看取)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 생활이 남 보기에 착하다든지 생활이 다른 사람 앞에서 봉사를 잘한다든지 남을 잘 도와준다든지 하는 것이 있기 전에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생활 자체가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인데 그 확실한 목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으셨다는 사실의 터 위에서 비로소 깨달은 목적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일생의 목적을 제멋대로 다 정하고 가지만, 그렇게 제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았으니 그 나라의 백성답게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큰 사명을 너도 같이 느끼고 같이 지고 전진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고로 그 사람이 남 보기에 착하다든지 사회에 봉사적이라든지 하는 그런 말이 가장 중요한 말이 아니고, 그 사람은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느냐, 옮겨졌으면 옮겨진 사람답게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옮겨진 자답게 산다는 것은 뭐냐 하면 다른 말로 하면 거룩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고, 그 거룩한 생활이란 무엇이냐 할 때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않고 저희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는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네의 확신하는 바가 있어서 – 그 확신하는 바라는 것은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의 큰 목적인데 – 그것을 향해서 늘 전진하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했느냐 하면, 그 믿지 않는 자의 나라, 곧 그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놓으신 까닭에 먼저 살고 있던 사탄의 권세나 믿지 않는 자의 세계가 가진 목적이나 사업에 관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라를 옮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가 매일 먹고 입고 일상의 항다반(恒茶飯)의 생활을 할 때 믿지 않는 사람 속에서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이 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 안에서 늘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늘 명백히 생각해 두자고 했습니다.

— 김홍전, <그리스도의 지체로 사는 삶>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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