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도덕은 결코 개인의 완성을 추구하지 않음

여기서 우리가 중요히 생각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에게 선하라든지 의로우라든지 진실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요컨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각고면려하고 노력해서 의나 선이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종교가 가르치는 방식입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의 종교가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고,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의 종교도 정통이나 복음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하고 의롭고 아름답고 진실하라 할 때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경계냐 하면 성경은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스스로 거기에 도달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본질적인 부패와 타락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원하는 이것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저것밖에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롬 7:19 참조) 그런고로 아무리 선미(善美)를 원할지라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얻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비록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 할지라도 원하는 이것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저것만 행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법칙이 우리에게 있어서 그 죄의 법칙이 우리를 지배하니까 그렇다고 했습니다.(롬 7: 23-25 참조) 죄의 법칙이 있다는 걸 무시하고 사람이 스스로 고고한 경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같이 생각하는 망상과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신을 의지해서 도달해 보겠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목표가 그릇되면 안 된다는 것을 또 하나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개인이 의롭고 선하고 아름답다고 해도 그 개인만으로는 완성되지도 않을뿐더러 개인만으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성경이 늘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즉 개인의 도덕적 완성이나 개인의 인격의 완성이라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이지 기독교에서는 안 가르치는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 나라의 도리가 가르치는 것은 개인의 완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의 완성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나라는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신령한 몸의 완성에 따라서 같이 완성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자신 하나하나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이 최후에 가서 완성됨으로써 비로소 내가 도달해야 할 그 의롭고 선하고 아름답고 참된 위치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덕은 개인 향상 위주의 개인주의적인 도덕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윤리 사상을 우리가 깊이 생각할 때에 항상 개인을 중점으로 생각하는 사상은 비신국적(非神國的)인 사상입니다. 그렇게 배우든지 그렇게 가르치는 것은 요컨대 하나님 나라의 큰 사상의 내용을 기저로 해서 성경을 소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것은 착해라, 의로워라, 혹은 참되라, 아름다워라 하는 뜻이다’ 하고 자기가 얼른 지레짐작하는 까닭에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전체의 기조 위에서만 해석해야 합니다. 성경이 크게 목표를 세워서 가르치는 그 터 위에서 그 다음의 자자하고 세세한 문제도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큰 문제를 떠나서 늘 부분만 우선적으로 잡고 해석할 때에 큰 오류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중략]

그러한 많은 것을 저 자신이나 여러분이 다 경험했는데 이 나라뿐 아니라 저 나라에 가서 사방에 다니면서 들을 때 항상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가? 기독교도 결국 개인의 구원과 개인의 인격적인 완성이 최고의 목표인가? 그러면 다른 종교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목표나 가지고 있는 구상이 어떻게 다른가?’ 하고 한번 질문하고 자꾸 의문을 캐 볼 때 성경은 “너 하나를 위해서 거룩한 도리가 있다”고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김홍전, <그리스도의 지체로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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