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론에 있어서 기독교와 타종교의 차이

예전에 종교다원주의에 대해 얘기할 때 잠간 언급한 적이 있지만, 기독교의 생활론을 결국에는 사랑하며 살으라는 것으로 이해할 때 다른 종교와 생활론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가 쉽고, 결국 누구를 믿느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며 살아가는 모습과 방향에서는 종교 간에 차이가 없다는 다원주의적 착상이 들어서게 된다 [1].

그러나 기독교의 생활론은 “내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증시가 불가능 하다”는 큰 사실 아래 “오직 성령님께서 만이 이루신다”는 큰 진리를 따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효”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지향하는 것은 나 개인의 인격 도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의 완성”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의 생활론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반석이 된다. 이것을 떠나서 무슨 생활론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기독교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특히 이런 부분에 있어서 성화론을 바로 파악하여 빛을 발한 것이 청교도 신앙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엔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지만 성화는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중적 원리가 없다. 우리 믿음의 시작도 마침도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다.

기독교는 말 그대로 그리스도교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티끌 하나도 의미가 없다.

생활론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이 개입할 때 기독교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가 아니라 여타 인간의 교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유도하는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아예 그리스도인의 거듭남 자체도 사람과 하나님의 합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개혁교회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그토록 강조하는 두번째 이유다 (첫번째 이유는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합력이라는 사상이 교회에 들어올 때 교회가 거두게 될 결과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Notes

[1] 여기에 대해 많은 기독교인들은 죽어서 천당가려면 그래도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강변하지만, 그런 대답은 결국 우리 삶에서의 선행을 무용지물로 만들며 어쨌든 믿음만 있으면 천당간다는 부도수표를 남발하게 된다 (기독교인이라면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너는 믿지 않았다”는 인간적인 자랑만 더할 뿐이고, 이것은 결코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 왜냐면 구원은 예수님의 선물이지 내가 믿음이라는 “돈”을 지불하고 사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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