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

‘하나님의 인도’를 생각할 때, ‘어디로 갈 것인가’ 또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 우선 생각하기 쉽다. 이 둘 만 놓고 보았을 땐 ‘어디에 있을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해지면 어디 있을 것인지는 자연스럽게 정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판별할 지혜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비추어 보았을 때는 ‘무엇을 할 것인가’는 차라리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에 따라 무엇을 하는지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히 생각하고 우선해서 생각할 것은 주께서 나를 기르시고 빚으시려는 분량에 비추어 나는 지금 어디에 도달해 있는가이다 — 즉 주께서 나를 어떤 자질을 갖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려는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장성의 길에서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없이는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

요사이 이러한 문제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은 그리 긴 것이 아니다. 순식간에 주를 뵐 날이 온다. 그 날은 결산의 날이다. 우리가 헛되이 내뱉은 한 마디에 대해서도 주께서 물으시는 날이다. 물론 신자는 영원한 멸망을 면제 받았다. 그러나 주인의 앞에 서서, 지금까지 맺은 열매들에 대해 보고할 그 날을 생각할 때 긴장되지 않는 종이 누구랴 — 그것도 절대의 주 앞에서. 우리에게는 주께서 받으실 만한 열매를 맺을 능력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성령님의 주장 아래서 늘 살아가야 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늘 자기를 부인하고 주께 전부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시체 보다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