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섹스, 그리고 사랑

몇 해 전, 유명한 찬양사역자 한 분의 스캔들로 인해 그의 부인이 매우 화가 나 그의 섹스 중독적인 행동을 공적으로 언급하였던 일이 있었지요.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그의 죄에 대한 책임은 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비난할 수 없었던 이유 중 몇 가지만 들자면, 그는 죄를 이길 힘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과 복음이 가르치는 성화의 도리를 바르게 배운 일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고, 또 정도만 다를 뿐 나 역시 마음으로 수 없이 간음을 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찬 섹스 중독자들에 대한 책을 근래에 읽고 그의 상태에 대해 훨씬 더 동정심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섹스 중독자들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뼈 속 깊이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꾸준한 교회 활동과 예배 참석, 기도, 이러한 것들이 그의 빈 영혼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섹스 중독자들은 대개 어렸을 때 양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습니다 — 여기서 말하는 양육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육하시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일반 사회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땐 너무도 훌륭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는 결핍이 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청년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달라붙어 부대끼다가 “얘가 귀찮게시리 왜 이래?”라는 말을 듣고 떨어져 나간 일이 있습니다. 다 큰 성인에게는 그런 말이 대수롭지 않게 들리겠지만, 어린 그에겐 ‘나는 남에게 성가신 존재일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라 나가며 그는 남에게 성가신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무의식 중의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포르노를 보게 되었고, 거기에는 아무런 조건 없이 오직 남성의 기분과 욕구에 모든 관심과 힘을 쏟는 여성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적어도 그 환상과 쾌락의 세계 속에서 그는 자위하며 채워지지 못한 그의 외로움을 잊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것이 한 번 두 번 습관이 되고, 결국 중독으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나는 여자 마다 그에겐 잠재적 섹스 파트너입니다. 아름다운 이성을 처음 보고 혹 느낄 수 있는 성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두번째 시선’이 항상 문제입니다. 그는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중독의 특징은 그에게 그것을 극복할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혼자 만의 시간은 그를 가장 흔들리게 하는 시간이 됩니다. 왜냐면, 그의 무의식 중의 외로움이 의식의 세계로 나온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그는 내면 깊은 곳의 아픔을 치유받지 못하고, 결국 더 큰 쾌락을 추구하기 쉽니다.

비록 위의 예시에서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가지고 얘기를 하였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우리 빈 영혼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섹스 중독자는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기 쉽습니다. 종교적 행사에 중독 된 사람, 일에 중독 된 사람, 자선 사업에 중독 된 사람, 연애에 중독 된 사람, 쇼핑에 중독 된 사람 등, 이러한 모습에는 공통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그 행동을 그만두라고 하면 ‘도저히 그러한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들에겐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다 채워주실 수 없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말로는 그러한 사실을 부인할지 모르나 행동은 그들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어떤 필요들은 채워져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에겐 그러한 것들(섹스 중독자에겐 성 관계가)이 너무도 필요하다는 잘못된 믿음이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먼 옛날에도 그러한 여인이 있었지요 — 주님께서 사마리아 땅을 지나실 때 만난 여인은 다섯 번의 이혼 후 이제는 혼인도 구차하고 그저 동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영혼이야 말로 사랑이, 하나님의 그 가슴벅찬 사랑이 필요했지만, 그녀는 그 사랑에 대해 알지 못했고 오히려 여러 남성들과의 관계속에서 상처만 더 커졌습니다. 그녀의 영혼은 마른 땅과 같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것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하나님은 나의 유일한 기쁨이시요 사랑과 진리와 아름다움의 영원한 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까요.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더욱 알고 느끼고 누리고 그 안에 거하며 더욱 더 주님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나는 그 분 안에, 그 분은 내 안에 거하시는 말할 수 없는 영광 가운데 내가 한 없이 거하길 원합니다.

“사람의 가장 높은 목적은 무엇입니까? — 사람의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스럽게 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하나님 만으로 채워질 수 있고 또 그러하도록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님 외의 것으로 그의 빈 영혼을 채우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놓는 우상 숭배이며, 그래서 사도 바울은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하지 않았던가요.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을, 하나님의 자비로운 눈길, 그 음성, 그 사랑스런 손길을 바라며 그 분으로 충만한 것임을 깊게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그러하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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