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고 또 죄를 지를 것을 아시고 용서하심

어제 주일 예배 말씀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조건 없는 사랑, 저에겐 그것이 정말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노라면 너무도 결점과 죄악 투성이라서, 아무래도 하나님의 본심은 “참 꼴도 보기 싫지만 ‘언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 들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저를 반기시리라 느껴집니다.

아마 간음 현장에서 잡혀 예수님 앞에 끌려온 그녀는 그 심정을 알 것입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에 그녀를 비난하는 군중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주님은 그녀 앞에 계십니다. 제가 그녀였다면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아… 이제 올 것이 왔다… 우려하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죄를 짓는 현장에서 걸려 주님과 맞닥뜨렸다… 무어라 하실까… ‘너는 어째서 또 간통을 저질렀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너를 참았고 또 각성시켰으며, 너 또한 다시 안 그러겠다고 수없이 반복하였잖니. 왜 그랬니.'”

주님은 입을 여셨다,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주님의 낯빛은 “난 너에게 참 실망했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없는 사랑과, 자비심; 천지를 지으신 대주재께서 우리의 흙먼지 같음을 다 아시고 바라보시는 한량없는 긍휼의 눈빛이었습니다.

두려움은 아무 것도 바꾸질 못합니다. 사랑이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께서는,

제가 똑같은 죄를 얼마나 반복할 것이며,
변화도 없는 공허한 회개를 얼마나 반복할 것이며,
얼마나 주를 배반할 것이며,
얼마나 주를 원망할 것이며,
얼마나 주님의 가슴에 못 박는 짓을 할 것인지를,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아셨고,
그 때 이미 저를 사랑하시었고,
또한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를 지시고,
목숨을 버리시고,
또 지금도 사랑하십니다.

저는 이것을 너무도 모릅니다. 저는 주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눈꼽 만큼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눈꼽 만큼도 모르는 그 사랑은 저의 눈시울을 뜨겁게 합니다.

아마 제가 그러한 사랑을 자주 잊고 또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사랑을 이 세상에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계속하여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알게 하여 주십니다.

전에 쓴 글에서 이 사랑에 대한 갈구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 때론 중독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을 적었습니다—그것은 일에 몰두한다든지 또는 쇼핑, 약물, 섹스, 연애, 또는 다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의 참된 치유는 오직 그리스도의 손길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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