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과 그 때는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하신 이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이 신비로운 글에서 사도 요한은 “말씀”에 대하여 적고 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했고,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이 예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같은 본문 14절). 이와 관련하여 종종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은, 그럼 어째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느냐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4:36)

즉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어째서 아버지는 아시지만 자신은 모르는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는가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기록한 것과 서로 상충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이것은 근거 있는 질문인데—다만, 그 근거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자태에 대한 오해 위에 있을 뿐이다. 그 오해는 전에 쓴 글에서 약술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과 비슷한데, 소위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라는 껍대기만 쓰고 계셨던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겉모습만 사람이지 속에선 하나님의 모든 인격적 활동에 아무런 제한이 없으셨다는 식의 생각이다. 이러한 오해를 하면 위의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이 모순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셨고 동시에 그 분의 인격은 말씀이신 하나님께 종속된 것이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말씀이신 하나님께 종속되었기에 죄가 없으시다. 또한 참 사람이셨기에 사람이 갖고 있는 연약함을 (죄성만 빼고) 다 경험하신 것이고 이것은 인격적인 활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왜냐면 사람은 인격과 육체가 분리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처음 육신이 되어 오셨을 때엔 그 인격적인 활동에 있어서 상당한 제한을 경험하신 것이다. (그렇게 제한을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예지와 통찰력을 가지셨음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이렇게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사실을 바로 생각할 때 마태복음 24:36은 전혀 모순 된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예수께서 더 이상 아무런 물리적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는 영광스런 육체를 부활 후 입으셨을 때는 이러한 문제가 없어졌다. 그래서 부활하신 후에 하신 다음 말씀에는 자신은 모르신다는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는 것이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7,8)

위의 말씀에는 구원의 경륜을 성부 하나님께서 구상 하신다는 직분상의 구분을 언급하셨을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 영광의 보좌에 오르셨다든지, 마지막 날 그 나라를 아버님께 바친다고 하는 성경의 기록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메시아의 직분과 관련된 이야기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말씀이신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런 오해를 하면 이러한 성경의 기록들이 통일성 있게 바로 이해되지 못 할 것이다.

(참고문헌: “내 증인이 되리라“, 김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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