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전병욱 목사의 교회 개척 소식을 접하며

여신도들을 성추행 했다는 고발로 인해 2010년 삼일교회 목사직을 사임했던 전병욱 씨 — 그가 교회를 (가칭 홍대 새교회) 개척한다는 소식으로 인해 고국의 교계는 다시 한 번 시끄럽다. 이 사건을 둘러싼 여러가지 것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것은 고국 교회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큰 결핍과 타락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1) 전병욱 씨의 타락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사도 바울이 신자들을 탄압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왜 내 신도들을 핍박하느냐고 묻지 아니하시고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전병욱 씨는 그저 몇몇 신도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죄를 저지른 것이다. 따라서 그의 회복 역시 교회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그가 훼손한 것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회복을 힘쓸 것인지 마땅히 교회의 장로들에게 묻고 순종하며 적절한 권징을 받았어야 했고,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보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개인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사임했고 한 동안 쉬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자신이 훼손을 가한 교회의 회복에 어떤 노력 조차 보이고 있지 않다. 그가 교회에 대해 갖고 있는 이해에 큰 결핍이 있음을 볼 수 있다.

(2) 삼일교회의 타락

목사의 자질이 부족하면 장로들이 그를 잘 이끌었어야 했다. 권징이라고 하는 것은 ‘혼을 내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에 주된 목적이 있다. 나는 삼일교회 장로들이 전병욱 씨의 사직서를 수용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도가 어떤 교회의 회원이 될 때는 자신이 혹 방황할 때 그냥 내버려 두지 말고 바른길로 꼭 붇들고 가주시라는 약속을 교회에 요구하는 것이고, 교회 또한 그 다짐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가 방황할 때 그가 분별력을 잃은 상태에서 하는 말들을, “나가겠다” 같은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이다. 전병욱 씨는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과거나 지금이나 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사람이다. 그는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임이 분명하므로 특히 장로들의 지도 아래서 회복을 힘써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돈이나 쥐어 줘서 보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2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전병욱 씨의 죄상을 떠벌리는 삼일교회의 당회를 바라볼 때, 진정 성도들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 삼일교회의 당회는 참 교회의 표징 중 하나인 ‘바른 권징의 시행’ 능력이 없을 정도로 타락한 것으로 보인다.

(3) 한국 기독교회의 타락

이 사건을 둘러싸고 내가 가장 쉽게 접하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반응은 전병욱 씨에게 콩밥을 먹여야 한다던지,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 맡긴다던지, 개척을 못하게 막아야 한다던지,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켜야 한다던지, 아니면 그냥 막무가내로 전병욱 씨를 욕하는 것들이다. 세상에서 자라면서 배운 도덕 정조를 가져와 논하는 것이 대부분이지,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가르친 교회의 조직 및 법도들에 대한 반성은 찾기가 어렵다. 교회에 대한 비판도, 개혁도, 모든 것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 만을 의지해서 해야 하는데, 일반 사회에서 살아 오며 익힌 윤리 의식과 방법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타락이 되는 것이다.

이상의 면들을 생각할 때, 전병욱 씨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단지 한 목회자의 타락상이 아니라 고국 교회의 전반적인 타락상이다. 순결하고 거룩한 교회의 광망을 드러낼 힘이 너무도 부족하다. 각성이 있는 교회들은 더욱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분의 메시아적 왕권 앞에 순종하며 나가야 할 터이다.

끝으로, 마태복음 18:15–17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형제의 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가르치신다. 개인적으로 먼저 대화하고, 수긍하지 않는다면 두 세 증인과 함께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가르치고,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의 권위로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권위로 가르쳐도 회개치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신다. 이는 그 사람 자신은 믿음이 있노라고 할지라도 실상 참된 믿음이 없고 구원 받지 못한 자, 다시 말해, 복음을 전하여야 할 대상으로 여기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한 가지 발견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교회의 분자 됨을 따지는 기준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주신 하나의 기준은, 특정 죄를 지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죄를 지었을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교회의 권위에 보이는 반응을 놓고 생각하도록 하셨다는 점이다. 전병욱 씨를 보며 두려운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 그는 과연 그리스도의 교회 앞에서 마땅히 지녀야 할 겸비함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자신이 전에 몸 담고 있던 교회를 그냥 나가버리고 (자신은 자숙의 기간을 위해서라고 하나, 장로들의 지도 아래서 자숙하고 자신이 훼손한 교회의 회복에 힘쓰면서 재신임 받기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장로들의 권면에 귀를 닫고 개인적인 행보를 계속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그를 형제라고 여겨야 할까? 아무리 전병욱 씨 자신은 자기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말씀은 과연 그의 말을 우리가 믿도록 허락하느냐는 것이다. 전병욱 씨가 개척한다고 하는 교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심각히 고민하면서 무엇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좇는 일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