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과 하나님 나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27, 128, 129 문)

일 년의 마지막 주간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제 127–129 문답)은 주기도문, 특히 시험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문답이다. (아래는 독립개신교회 번역본이다.)

127문: 여섯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우리 자신만으로는 너무나 연약하여 우리는 한 순간도 스스로 설 수 없사오며, 우리의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인 마귀와 세상과 우리의 육신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나이다. 그러하므로 주의 성신의 힘으로 우리를 친히 붙드시고 강하게 하셔서, 우리가 이 영적 전쟁에서 패하여 거꾸러지지 않고,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우리의 원수에 대해 항상 굳세게 대항하게 하시옵소서.”

128문: 당신은 이 기도를 어떻게 마칩니까?

답: “대개(大蓋)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왕이시고 만물에 대한 권세를 가진 분으로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며 또한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구하옵니다. 이로써 우리가 아니라 주님의 거룩한 이름이 영원히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129문: “아멘”이라는 이 짧은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아멘”은 참되고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이런 것들을 소원하는 심정보다도 더 확실하게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으십니다.

아래는 127문에 대한 김헌수 목사님의 강설 중 일부분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4, 250–251 쪽). 굵은 글씨 강조는 졸인이 한 것이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시험은 개인적이거나 윤리적인 것이라기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진행을 반대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시험을 윤리적으로만 이해하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한 것을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윤리적으로 볼 때에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반대하면서 시험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전에 ‘하나님의 뜻’에 관한 셋째 간구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뜻은 개인의 관심사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우선적으로 구원과 관련된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의 시험도 어떤 개인에 대한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을 포함해서 더 넓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행을 방해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끄집어내려는 것이 사탄의 궁극적인 의도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때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서 하나님의 말씀에 살짝 다른 것을 더하거나 빼서 유혹합니다.

사탄의 시험은 인간관계를 통하여 오기도 합니다. 선후배의 관계나 기타 인간적인 관계의 측면에서 많은 말들을 하지만, 그것이 직분에 대한 부정당한 공격일 경우에는 사탄의 시험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에도, 사람들은 그들이 아는 사람이라고 하여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낭떠러지로 데리고 가서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눅 4:29). 사탄은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육신으로 아는 것을 이용하여서 예수님을 공격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공격에는 물론 개인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시험도 포함됩니다. 누가 윤리적으로 부도덕한 데로 끌려가면, 그 마음이 거룩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세상 물결에 그냥 휩싸여 가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시험입니다. 따라서 윤리적으로 잘못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에서 멀어진다는 점에서 시험이 됩니다. 개인이 윤리적으로 깨끗하다 깨끗하지 못하다는 그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 윤리적인 잘못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 시험의 핵심입니다. 그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진행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어떤 사람을 윤리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크게 부족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 사이에는 신령한 전쟁이 있습니다. 두 나라 사이의 신령한 싸움에서 시험이 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행에 장애를 두는 바로 그것이 ‘그 악한 자’에게서 나오는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선(善)’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먼저 구하라 하셨다. 기독교는 ‘착하게 살기’ 운동이 아니다. 물론 착하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이 가장 착할 때는 그리스도의 지체 혹은 분자로서 그의 나라의 행보와 함께 할 때 가장 착하다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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