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 Salvation,  신학 | Theology

김동호 목사의 개혁주의 예정론 비판

개혁교회가 고백한 예정론을 부인한 김동호 목사의 인터뷰를 보았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개혁교회는 소위 이중예정(double predestination)을 고백하였는데, 김동호 목사는 단일예정(single predestination)을 지지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보면 그는 원하는 것을 선택할 능력(ability to choose)과 선을 추구하는 능력(moral ability)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고, 또 스스로 구원의 믿음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인류 가운데 누구에게 믿음을 줄 것인지 결정하셨다는 것은 누구에게 믿음을 주지 않을 것이지 결정하셨다는 것과 동치임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세부적인 것 보다도 좀 더 거시적인 면에서 그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면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이중예정론이 칼빈주의 대표사상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 말은 옳지만) 그는 여전히 이중예정론을 칼빈이 고안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정론은 성경에 대한 칼빈과 칼빈을 따르는 칼빈주의자들의 이해와 해석”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중예정론이 칼빈주의의 대표사상이 아닌 이유는 이중예정론은 칼빈 뿐만 아니라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와 같은 거장들이 동의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거장들이 신학 전분야에서 의견 일치를 본 것은 아닌데, 그들이 예정론에서 의견 일치를 보였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둘째, 인터뷰에서 그는 “칼빈주의의 핵심은 ‘전적인 무능력의 교리’”라고 하였는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적무능력의 교리는 어거스틴의 신학이기도 하다 (유명한 펠라기우스와의 논쟁). 오히려 칼빈주의를 비롯한 뿐만 아니라 개혁자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다. 칼빈이 개혁이 필요한 첫번째 이유로 적은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불법으로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할 영광을 피조물에게 돌리지 말아야 한다고 개혁자들은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다 (sola scriptura). 이중예정론이 나온 이유는 성경이 구원의 모든 근거와 영광을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solus Christus). 우리가 복음을 믿을 것을 아시고 혹은 착한 일을 하실 것을 아시고 우리를 택하셨다는 식의 가르침은 성경에도 없을 뿐 아니라, ‘나는 복음을 거부하지 않았으므로’ 혹은 ‘나는 믿음에 걸맞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으므로’ 그것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셨다는, 구원의 공로에 자기 자신이 기여한 바를 집어넣는 교만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식들이 취할 것이 못 된다.

2 Comments

  • 개혁주의란?

    개혁신앙이 말하는 이중예정론, 칼뱅이 말하는 이중예정론 인가요? 여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싶습니다~! 흔히 이중예정론 하면 구원받을 자, 지옥갈 자 정해져 있다고들 하는데… 이중예정론이 이 범주에 속하나요?? 예정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네요…ㅠㅠ

    • Hun

      댓글을 통해 예정론을 다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앞으로 본 블로그에 관련 기사를 더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간단히 요한복음의 말씀 몇몇만 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의 다음 말씀들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7절)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39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4절)

      위의 말씀에서 보면 “아버지께서 예수께 주시는/이끄시는 자들”, “예수께로 오는 자들”, 그리고 “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같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 아버지께서 예수께로 주시는/이끄시는 자들은 예수께로 오는 자들이고 (37절) 아버지께서 예수께로 주시지/이끄시지 않는 자들은 예수께로 오지 않는 자들입니다 (44절).
      • 아버지께서 예수께 주시는/이끄시는 자들은 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자들이고 (39절), 아버지께서 예수께 주시지/이끄시지 않는 자들은 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실 자들이 아닙니다(44절).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예수께 주시는/이끄시는 자들”=”예수께로 오는 자들”=”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자들”입니다. 이 말은 물론 “아버지께서 예수께 주시지/이끄시지 않는 자들”=”예수께로 오지 않는 자들”=”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지 않으실 자들”임을 뜻합니다.

      안타깝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시지 않은 자들은 예수님께로 오지 않을 것이고 결국 멸망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불구하고 선택받지 못해서 지옥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봤듯이 멸망으로 들어갈 자들은 곧 예수께로 오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께로 살리실 자들이 예수께로 왔기 때문에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44절에 잘 나타나듯이, 예수께로 오는 자들은 처음부터 아버지께서 이끌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성부께서는 인류의 타락을 인가하셨고, 그 가운데 한 백성을 택하사 그들을 성자에게 주셨으며, 성자께서는 그 백성들을 구속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지상에서 이루셨고, 성신께서는 성자께서 이루신 구속의 공효를 택하신 백성들에게 입혀주십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