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와 자녀 훈육

아래에서는 부모의 책임이라는 면을 부각시켰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침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늘 가까이 있어서 주의 교양을 적절히 시행할 책임이 있는 양육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이 일을 신성한 책임으로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만일 어떤 어머니가 이런 책임감을 느끼고 집안일을 하며 이 책임을 좀 더 충실히 다하려고 하면 ‘공부도 많이 하고 유능한 사람이 왜 집안에서 놀고 있느냐?’ 합니다. 주의 교양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할 부모의 신성한 사명을 모르는 세상이 이 모양입니다. 세상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런 줄 아세요. 믿는 부모들은 이런 세상에 속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잠언 29:15에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나중에 커서는 도저히 휘어잡을 수도 없고 그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인생의 바른길을 알아서 자녀가 빗나가는 것을 볼 때에 꾸짖을 만큼 준비가 늘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자녀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해친다 하여 꾸짖지도 않고 매를 때리지도 않으면, 그렇게 임의로 하게 내버려 두면 결국에는 그 자식은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명히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채찍과 꾸지람만 자꾸 하는 것이, 잔소리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지만 무엇이 중요하냐 하면 인생의 바른길을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그 길로 순히 인도하다가 거기서 빗나갈 때에는 꾸짖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준비가 있어야지 그런 준비가 없으면 별수 없습니다. 자녀를 사랑한다 하고서 임의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또한 세대 차이가 있어서 부모의 세상과 자녀의 세상은 다르니까 자녀가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부모가 다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자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이 자녀의 정서 발달과 인격 형성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래서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부모의 세대에는 어떻게 믿는 모양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자녀의 세대에는 거룩한 자녀가 거룩한 백성이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해야 할 때에 준비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무슨 큰일을 한들 자기의 신성한 책임은 하나님 앞에 못하고 말 것입니다.

— 최낙재,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 2』 96-9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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