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강조하는 신율법주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59, 60, 61 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59–61 문은 오직 믿음을 통한 얻는 칭의에 관한 질문들이다 (아래는 독립개신교회 번역본. 마지막 61문의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

59문: 이 모든 것을 믿는 것이 당신에게 지금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며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됩니다 [1].

60문: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됩니까?

답: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만 됩니다 [2]. 비록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크게 어겼고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며 [3] 여전히 모든 악으로 향하는 성향이 있다고 [4] 나의 양심이 고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이 순전히 은혜로 [5] 그리스도의 온전히 만족케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선물로 주십니다 [6]. 하나님께서는 마치 나에게 죄가 전혀 없고 또한 내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실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을 내가 직접 이룬 것처럼 여겨 주십니다 [7]. 오직 믿는 마음으로만 나는 이 선물을 받습니다 [8].

61문: 당신은 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까?

답: 나의 믿음에 어떤 가치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실 만한 것은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의 만족케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만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가 됩니다 [9]. 오직 믿음으로만 이 의를 받아들여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10].

[1] 합 2:4; 요 3:36; 롬 1:17 [2] 롬 3:21-26; 5:1-2; 갈 2:16; 엡 2:8-9; 빌 3:9 [3] 롬 3:9-12; 약 2:10-11 [4] 롬 7:23 [5] 신 9:6; 겔 36:22; 롬 3:24; 엡 2:8; 딛 3:5 [6] 롬 4:24-25; 고후 5:21; 요일 2:1-2 [7] 롬 4:4-8; 고후 5:19 [8] 요 3:18; 롬 3:22 [9] 고전 1:30; 2:2 [10] 롬 10:10; 요일 5:10

아래는 이에 대한 김헌수 목사님의 강설 중 일부분이다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

예수님에 대한 나의 ‘믿음 때문에’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라고 말하는 사람은 믿음이 구원을 받는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복음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그 복음을 내가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 구원의 근거가 그리스도에게 있지 않고 믿음이 있는 나에게로 옮겨집니다. 예수를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 아닌 것이 섞여 있습니다.

그 문제점은 실제적인 데서 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강조점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부터 나의 믿음으로 옮겨지면, 이제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데로 나아갑니다. 뜨겁게 찬송하거나 기도하면 마음에 굳은 확신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바르게 찬송을 하고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을 불러일으키려고 감정을 자극하면 그릇된 데로 나아가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보다는 ‘믿음의 행위’를 강조하고, 내가 믿음을 고양시키기 위한 행위를 하면 구원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종교적인 행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유형의 선행에 근거하여서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그렇게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르친 것은‘신(新) 율법주의’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율법주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가 아니라 ‘사람의 행위’를 근거로 구원을 얻으려 하는 태도를 말하는데, ‘신’ 율법주의는 믿음을 바로 그 ‘사람의 행위’로 보고 그것을 근거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사람이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더 나아가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안하였습니다.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찬송가들을 부른다든지,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에 결단을 촉구하는 시간을 갖는다든지, 어떤 소모임에 소속하여서 생활을 많이 나누게 한다든지, 그러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흥회나 아니면 복음주의적 선교 단체들 안에서 그러한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향의 뿌리는 18세기와 19세기의 부흥 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역설적이지만, 믿음을 강조하는 ‘신율법주의’가 간과하는 것은 바로 복음의 사실입니다. 내가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나의 믿음의 행위는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유일한 근거는 내 믿음이 아니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나의 믿음을 구원의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신율법주의는 율법주의의 일종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것처럼 믿음을 짜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율법주의의 또 다른 변형이고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는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2, 208–210 쪽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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