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가 지니는 성격

성신의 열매라는 말은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나오는데, “성령의 열매는…” (“The fruit of the Spirit is…”)하고 시작하는 이 말은 단수로 쓰였지 복수가 아니다. 그러니까 뒤따라 나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는 성격들은 다양한 종류의 성신의 열매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열매에서 단맛과 신맛 뿐만 아니라 씹히는 맛 등을 골고루 찾을 수 있는 것 처럼, 성신께서 개인 뿐만 아니라 특히 교회 가운데 맺으시는 열매 가운데 사랑, 희락, 화평 등과 같은 다채로운 성격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혹은 우리 교회는 충성의 열매는 있는데, 절제의 열매는 없다’는 식의 생각은 썩 좋은 것이 아니다.

아래는 최낙재 목사님의 강설 가운데 성신의 열매에 관한 구절들이다:

성신이 있는 사람은 성신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성신이 없는 사람은 불가불 육체의 일을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신이 없는 사람들은 육체가 되어서 이런 부패한 것들을 내놓아서 세상을 이루어 놓고 세상을 더럽게 하고, 성신이 있는 사람은 이런 아름다운 열매를 내놓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신으로 말미암아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가 뚜렷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세상과 교회가 서로 섞일 수 없는 실체로 대결하게 만듭니다. 다 같이 땅 위에서 하늘을 지붕 삼고 살고 바로 곁에 있지만 서로 다르고 섞일 수 없는 존재로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것, 하나님의 교회에 있는 것을 가리켜서 ‘성신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가운데 성신께서 계시다’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신께서 사람을 강제하지 않는 것을 또한 말합니다. 성신께서 그 안에 계셔서 어떤 독재자가 강제로 사람들을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고 마음대로 하는 것같이 사람들을 그렇게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열매는 나무에서 자연스럽게 맺히고 또 자라는 것입니다. 외부의 압력으로 하루아침에 맺히는 그런 열매란 없습니다. 세월을 두고 천천히, 그러나 생명력이 있어서 꾸준히 자연스럽게 누가 막을 수 없는 힘으로 열매가 맺히고 자라는 것입니다. 성신께서 사람 안에 계시면 그 사람이 언제인지 모르게 이런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신께서 교회 안에 계시면 그 교회가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큰 능력으로 이런 열매를 맺어 가는 것입니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 것입니다. 열매는 조작할 수가 없습니다. 인조적으로 하면 그날 하루는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려 있을지 모르지만 그 다음날에는 졸아들고 쭈그러져 버리잖아요. 어떻게 인조적으로 나무에다가 열매를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교회가 참으로 하나님의 교회냐, 아니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한 이런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으로써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교회 혹은 그리스도의 교회라 하는 간판을 달아 놓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교회인지 아니면 이름만 교회이고 실지는 세상인지 하는 것은 그 안에 그런 열매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아서 있으면 하나님의 교회이고 없으면 세상인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일단은 그것이 고백한 것이 되었으니까 좋은 것이지만, 그 사람에게서 열매가 나오느냐 할 때에 전혀 그런 것은 찾아볼 수가 없고 그냥 세상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렇게 열매로써 그 나무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이고 변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 최낙재,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 2』 193–195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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