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례전 | Sacraments

성찬으로의 초대에 응하는 태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77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77문은 성찬의 약속에 관한 것이다 (아래는 독립개신교회 번역본):

77문: 믿는 자들이 이 뗀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는 것처럼 확실히,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그의 몸과 피로 먹이고 마시우겠다는 약속을 어디에서 하셨습니까?

답: 성찬을 제정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바울 사도는 거듭 이 약속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

히브리서는 그 전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탁월함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히브리서 10장에서는 황소와 염소의 피와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의 고귀함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무시하고 그림자와 같은 구약의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인지 경고하고 있다 (히 10:29).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찬으로의 초대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아래는 이에 관한 김헌수 목사님의 강설:

우리는 ‘개인주의적’으로 성찬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살피고 성찬에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라고 명령하셨지만, 어떤 사람은 주님의 명령에서 앞부분만 자기가 편한 대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살피라는 말씀만 생각하고 “받으라. 그리고 먹으라”는 명령에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뒷부분은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살피라는 명령에는 순종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매우 공리주의적인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성찬에 나아오지 않으면 주님의 징계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성찬에 참여하여서 징계를 받는 것보다는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받으라’는 명령은 순종하지 않고 자기를 살핀다는 명목으로 뒤로 물러서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살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바르게 분별하고서 성찬에 참여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를 살핀다고 하면서 주님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크게 잘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찬을 ‘사회적인 관계’에서 생각합니다. 주님의 상에 나아가려고 자기 자신을 살필 때에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지만 주위의 사람을 의식하여서 그냥 성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성찬 상의 주인인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면서 그 공효를 덧입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목을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성찬 상의 주인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바르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성찬을 개인주의적으로 생각하거나 사회적인 관계에서 생각하는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찬의 주인인 예수님께 대하여서 관심이 적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의 제사를 이루시고 그 공효를 입혀 주시려고 나아오라고 명령하시는데, 주님의 초청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생각하면서 뒤로 물러서거나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외식(外飾)하는 마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주님께서는 매우 싫어하십니다. 성찬 예식문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의를 과시하려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찬은 나의 믿음의 표가 아니고 주님의 은혜 언약의 표와 인이며,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서 주님의 상에 나갈 것입니다.

—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2』, 325-327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