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언약(시내산 언약)은 은혜의 언약인가 행위의 언약인가?

1. 모세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의 관계

1.1 은혜의 언약의 모델로서 아브라함 언약

은혜의 언약의 핵심. 아브라함 언약을 보면 그 시작이 다음과 같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3) 한 마디로 응축해서 표현하면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의 언약’의 핵심이다.

은혜의 언약은 신령하고 영원한 언약.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된다는 이 은혜의 언약은 그 본질에 있어서 신령한(spiritual) 것이며 영원한 것이다.

은혜의 언약은 영적인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이들이야 말로 참 이스라엘로서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예한다 (롬 4:16, 9:6-8; 갈 3:29).

은혜의 언약에는 표면적으로만 참여하는 사람이 있음. 야곱과 에서의 예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언약에 내면적으로(internally) 관여된 자들과 표면적으로(externally) 관여된 자들이 있다. 달리 말하자면, 야곱과 에서 모두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의 회원들이었지만, 오직 야곱 만이 보이지 않는 교회(invisible church)의 회원이었다.

1.2 아브라함이 은혜의 언약과 더불어 받았던 현세적 언약

아브라함이 받은 현세적 언약. 신령한 은혜의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 후 본질에 있어서 현세적인(temporal) 약속을 함께 받았는데, 즉 그의 육체적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 (창 13:14-17).

현세적 언약의 한시적 속성.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중심으로 한 현세적인 약속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한시적인 약속임을 알고 있었다 (히 11:9-16).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가나안과 관련된 현세적인 약속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은혜의 언약에 포함 되지 않는다.

현세적 언약은 육체적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아브라함이 받은 신령하고 영원한 은혜의 언약은 참 이스라엘 곧 믿음으로 언약을 받는 사람들과 맺으신 것이다 (롬 4:16, 갈 3:29). 하지만 아브라함이 받은 현세적이고 한시적인 약속은 그 대상이 아브라함의 육체적 자손들을 위한 것이었다 (창 15장).

1.3 모세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을 새롭게 한 것

모세 언약은 본질적으로 은혜의 언약. 약 400년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육체적 자손들은 모세와 더불어 시내산에 모아 당신의 언약을 선포하신다. 그때 제일 먼저 발하신 선언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이다 (출 20:2, 신 5:6). 이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은혜의 언약 바로 그것이다. 시내산 언약은 본질적으로 아브라함이 받은 은혜의 언약을 새롭게(renew) 하신 것이다.

모세 언약에 나타난 은혜의 언약. “나는 […] 네 하나님 여호와라”하신 시내산에서의 은혜의 언약은 십계명을 필두로한 모세 법전을 주시기 전에 선언하신 것이다. 율법을 지켜야 너희가 내 백성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내가 이집트에서 구했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니, 그러므로 십계명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은혜의 언약은 사람에게서 조건을 찾지 않는다.

모세 언약에 나타난 현세적 언약.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바 가나안 땅에 관한 현세적인 언약 역시 시내산에서 새롭게 하셨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 국가 곧 아브라함의 육체적 자손들에게 주신 약속인데, 모세 법전을 실정법(實政法)으로 한 신정 국가로서 가나안 땅에서 거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신 28:1-14).

현세적 언약의 한시적 속성. 이스라엘 민족 국가와 맺으신 현세적인 약속은 하나님의 의도상 한시적인 약속이었다 (히 9:10). 아브라함도 그랬고 모세도 가나안 땅에 관한 약속은 신령하고 영원한 은혜의 언약의 일부분이 아닌 현세적이고 한시적인 약속임을 알고 있었다 (갈 3:19; 히 8:8-13, 11:39).

The covenant of Sinai was essentially the same as that established with Abraham, though the form differed somewhat. This is not always recognized, and is not recognized by present day dispensationalists. They insist on it that it was a different covenant, not only in form but in essence. […] The reason why it is sometimes regarded as an entirely new covenant is that Paul repeatedly refers to the law and the promise as forming an antithesis, Rom. 4:13 ff.; Gal. 3:17. But it should be noted that the apostle does not contrast with the covenant of Abraham the Sinaitic covenant as a whole, but only the law as it functioned in this covenant, and this function only as it was misunderstood by the Jews.

—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Part 2, Ch. 3: Man in the Covenant of Grace, Sec. V.B.4

1.4 모세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의 차이

모세 언약에서 현세적 언약이 행위의 언약 형태를 갖춤. 현세적 언약과 관련해서는 아브라함 때와는 차이가 하나 있는데, 가나안 땅에서의 복지라는 현세적인 약속을 시내산에서 새롭게 하시면서 거기에는 조건이 있음을 밝히신 것이다 — 즉 율법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 18:5; 신 27:26-28:1). 이것은 그 형식상 행위의 언약(covenant of works)이다.

행위의 언약의 한시적 속성. 이 행위의 언약이 현세적이라는 면에서도 한시성을 띠고 있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의 의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예견 되었다는 면에서도 한시성을 지니고 있었다 (롬 3:20; 갈 3:11, 3:21; 히 8:13). 행위의 언약은 거기에 제시된 요구를 사람으로 하여금 지키게 만들 능력까지 약속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갈 3:21, 고후 3:6).

행위의 언약은 은혜의 언약을 수종듦. 현세적이고 한시적인 행위의 언약은 신령하고 영원한 은혜의 언약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실상 은혜의 언약을 믿고 의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갈 3:21-24). 다시 말해 현세적인 약속은 은혜의 언약의 수종(隨從)이었다 (갈 3:16-17).

But though the covenant with Abraham and the Sinaitic covenant
were essentially the same, yet the covenant of Sinai had certain characteristic features.

      (a) At Sinai the covenant became a truly national covenant. The civil life of Israel was linked up with the covenant in such a say that the two could not be separated. In a large measure Church and State became one. To be in the Church was to be in the nation, and vice versa; and to leave the Church was to leave the nation. There was no spiritual excommunication; the ban meant cutting off by death.
      (b) The Sinaitic covenant included a service that contained a positive reminder of the strict demands of the covenant of works. The law was placed very much in the foreground, giving prominence once more to the earlier legal element. But the covenant of Sinai was not a renewal of the covenant of works; in it the law was made subservient to the covenant of grace. This is indicated already in the introduction to the ten commandments, Ex. 20:2; Deut. 5:6, and further in Rom. 3:20; Gal. 3:24. It is true that at Sinai a conditional element was added to the covenant, but it was not the salvation of the Israelite but his theocratic standing in the nation, and the enjoyment of external blessings that was made dependent on the keeping of the law, Deut. 28:1-14. The law served a twofold purpose in connection with the covenant of grace: (1) to increase the consciousness of sin, Rom. 3:20; 4:15; Gal. 3:19; and (2) to be a tutor unto Christ, Gal. 3:24.

—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Part 2, Ch. 3: Man in the Covenant of Grace, Sec. V.B.4

 

2. 모세 언약과 그리스도 언약의 관계

그리스도의 언약은 본질적으로 아브라함의 언약. 그리스도의 피로 새워진 새 언약 역시 그 본질에 있어서 아브라함이 받은 은혜의 언약이다 (롬 4:16; 갈 3:7, 3:29). 아브라함–모세–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언약들은 모두 그 본질상 아브라함이 받은 신령하고 영원한 은혜의 언약이다.

“새 언약”과 “옛 언약”의 차이는 행정의 차이.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언약이 “새 언약”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이전에 없던 언약이라서가 아니다. 성경이 그리스도의 언약을 “새 언약”이라고 부를 때는 항상 모세 언약과 비교해서 후자를 “옛 언약”이라고 부른다. 앞서 아브라함-모세-그리스도 언약은 본질에서 은혜의 언약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모세 언약이 다른 점 하나는 이스라엘 민족 국가와 한시적으로 행위의 언약이 첨부 되었다는 것 뿐이다. 이스라엘 나라와 맺으신 현세적 언약이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폐기가 되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언약이 새롭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약과 구약의 차이는 본질의 차이가 아니라 행정(administration)의 차이이다.

모세 언약에 한시적인 행위의 언약이 첨부된 이유. 시내산에서 현세적인 행위의 언약을 비록 한시적이지만 첨부하신 이유는 은혜의 언약과 그 보증이 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가르치시고, 그리스도가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지 또한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갈 3:24, 롬 10:4).

한시적이고 현세적인 행위의 언약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폐기됨. 은혜의 언약의 보증인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오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때를 기점으로 이스라엘 민족 국가와 맺은 행위의 언약은 만료 및 폐기되었다 (엡 2:15; 히 7:18, 8:8, 8:13, 9:10; 갈 3:19, 3:25). (그러므로 1948년 이스라엘 국가의 재건은 1945년 대한민국의 창건 만큼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이 없는 사건이다.)

그리스도께서 새롭게 하신 은혜의 언약 행정.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신령한 이스라엘, 참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은 아담 이후로 은혜의 언약 밖에 없다. 비록 구약의 교회를 담는 그릇 역할을 한 이스라엘 민족 국가와는 한시적으로 그 나라의 복지와 관련된 행위의 언약을 맺으셨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은혜의 언약을 새롭게 하시면서 그 현세적인 행위 언약을 폐하셨다 (롬 7:6, 엡 2:15; 히 7:18, 8:13, 9:10; 갈 3:19, 3:25; 마 21:19). 그 일면에는 행위 언약의 조건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 국가의 죄책이 있다 (마 21:19). 이렇게 하여 구약의 교회를 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 국가라는 그릇은 깨뜨려지고, 그리스도게서 새롭게 하신 은혜의 언약 아래 신약의 교회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으로 구성된 보편성을 증시하며 나왔다 (엡 2:11-22, 벧전 2:9-10). 민족 국가가 아닌 신령한 나라,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성신으로 다스리시는 은혜의 왕국(regnum gratiae)으로서 출범한 것이다 (골 1:13).

3. 칭의와 성화를 포함한 구원의 유일한 언약

성화의 능력을 주지 못하는 율법. 그리스도께서 보증이 되시는 은혜의 언약이, 이미 폐기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 국가와 세운 현세적 약속과 비교하여 더 우수하다고 성경은 (특히 히브리서는) 말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행위 언약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할 능력을 전혀 제공하지 못하지만, 오직 은혜의 언약이 그 능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후 3:6; 히 7:18, 9:9; 롬 8:3-4). 은혜의 언약은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렘 31:37, 겔 36:26-27, 롬 8:3-4).

은혜의 언약의 복에는 칭의와 성화가 포함됨. 은혜의 언약 아래서 성화는 칭의의 필연적이고 당위적인 결과이다 (겔 36:26-27, 롬 8:3-4, 고후 3:6, 히 10:22). 돌려 말하자면 은혜의 언약 아래 거하는 것은 성화의 정도나 신실함(faithfulness)에 달려있지 않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결과를 원인으로 놓는 것이며, 마차를 말 앞에 놓는 오류이다.

은혜의 언약과 관련된 대표적 오류. 은혜의 언약이 보장하는 복은 칭의와 성화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대표적 오류는 다음과 같다: 은혜의 언약 아래서는 율법의 요구를 따를 당위가 없다고 말하는 반법주의(antinomianism)가 있다. 반대로 은혜의 언약 가운데 입문하는 것은 아무런 조건이 없지만, 그 언약의 백성으로서 계속 인정 받는 데에는 조건이 있다고 말하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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