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 (8)

  • 율법 =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할 것
  • 복음 =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우리의 구원을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그의 복음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그를 찬송하기에 시편 보다 더 좋은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시 98:1-3)

이 때 “이스라엘의 집”이라 함은 우리가 통상 말하는 이스라엘 국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 아담 이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지킨 무리를 지칭한다고 바울 사도는 가르쳤다 (롬 4:16, 9:6-8; 갈 3:7, 3:29). 바로 그 언약의 백성들 곧 하나 뿐인 보편 교회(catholic church)가 참 이스라엘이다. 그들이야 말로 말씀과 성신으로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생명으로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바로 그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은혜의 언약 곧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는 하나님의 맹세이다.

그 맹세 속에는 당신의 백성들에게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고 또 그것을 위해 성신으로 내주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들어있다 (겔 36:22–27). 신자는 하나님의 이 맹세를 믿는 자들이다. 비록 하루 아침에 그 변화가 다 일어나는 것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맹세를 지키사 성신의 능력으로 장성시키실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기의 공력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 (이 말은 하나님의 법에 저절로 순종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신자는 자신의 성화와 장성이 성신께서 맺으신 열매임을 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는 것은 자기의 신앙을 증명하려 함이 아니다. 자기의 신실함을 증명하려 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이뤄짐을 믿음이며 또한 그것이 이뤄짐에 찬송을 드리는 것이다 (엡 1:3-14, 빌 1:11).

그러므로 신자의 생활은 본질적으로 송영(doxology)이다. 주께서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구원을, 그 펴신 팔을 찬송하며 따라감이다.

신자는 하나님께 무슨 인정을 받으려고 경건을 추구하지 않는다. 아니, 하나님의 완전한 법의 기준으로는 인정은 커녕 나날이 죄를 더하는 우리이건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단 번의 제사로 영원히 우리를 온전하게 하셨음을 알기에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긴다 (히 10:14-25). 그리스도의 공효로 인해, 신자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는 형벌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죄를 자꾸 범하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신다 (롬 5:9-11).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보장하시면 누가 하나님을 섬기겠냐고 묻는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공포가 경건의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다면 귀신들보다 경건한 자를 찾기 어려우리라 (약 2:19, 마 8:28-29, 막 1:23-24, 눅 4:41).

신자가 하나님의 법을 좇아감은 그것이 임금의 명령이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의 언약이 그의 손을 잡고 그리로 인도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심장을 그리로 몰고 가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그의 크신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가장 좋은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 119:47, 요 14:15, 요일 5:1-3, 벧전 2:9-12; 골 3:17).

김홍전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도행전 강해 제 3권) 신자는 ‘자기 자신의 성화나 성성이나 자신의 안심입명이나 정신적인 평안을 찾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열반을 찾는 것이 아니다 — 자기 자신이 어디로 떨어지든지 자신의 도덕적 향상이나 타락에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하게 증거되며 그리스도의 거룩한 계획이 인류의 역사 위에서 찬연히 늘 빛나게 나타날 것인가 하는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다. 거기에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성신을 의지함으로만 가능하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4)

연재물:

  • 율법과 복음 (1) 율법과 복음의 범주를 설명한다.
  • 율법과 복음 (2) 율법의 범주 아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오직 복음의 사실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세운다.
  • 율법과 복음 (3) 복음은 하나님께서 옛적부터 맹세하신 구원의 언약이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기쁜 소식이다.
  • 율법과 복음 (4) 복음 약속, 곧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은 우리 조상 아담이 죄를 범하여 죽게 된 직후 하나님께서 즉시 베푸신 언약으로서, 아담 이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유일한 구원의 언약이다.
  • 율법과 복음 (5)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은 우리의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 까지 약속하고 있다. 그 영원한 약속이 반드시 이뤄지도록 성부께서는 맹세를 하셨고, 성자께서는 자기 피를 가지고 보증이 되시며, 성신께서는 우리를 보전하신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에게서 마친다.
  • 율법과 복음 (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의 언약을 지키시는데 사람 쪽에서 근거를 찾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근거를 찾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언하신 은혜의 언약을 사람이 ‘지키는’ 것은 그 약속을 ‘믿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 율법과 복음 (7)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그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그 믿음 자체가 사람이 일궈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 중에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헛된 믿음이 있다.
  • 율법과 복음 (8)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맹세하신 은혜의 언약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약속이 영원한 약속이 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는 골고다에서의 단 번의 제사로 영원히 당신의 백성들을 온전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는 하나님과 멀어질 것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그 능하신 팔로 행하신 구원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따라간다. ...
  • 율법과 복음 (9) 우리 시조 할아버지 아담이 범죄한 직후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복음 곧 은혜로운 구원의 언약을 베푸셨다. 아담 이래로 믿음으로 그 언약을 지킨 무리들이 곧 하나뿐인 보편적 교회(catholic church)이다. 그 보편적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단번에 받은 믿음(유 3)의 내용 앞에 우리의 신앙을 비춰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이번 편에서는 그동안 ‘율법과 복음’이라는 제목 아래 상고한 것들을 역사적인 신앙고백과 비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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