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예배의 방식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96, 97, 98 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96–98 문은 십계명 제 2계명에 관한 것이다: (다음은 독립개신교회 번역본)

96문: 제2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고 [1],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서 명하지 아니한 다른 방식으로 예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2].

97문: 그렇다면 어떤 형상도 만들면 안 됩니까?

답: 하나님은 어떤 형태로든 형상으로 표현될 수 없고 표현해서도 안 됩니다. 피조물은 형상으로 표현할 수 있으나, 그것에 경배하기 위해 또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형상을 만들거나 소유하는 일은 금하셨습니다 [3].

98문: 그렇다면 교회에서는 “평신도를 위한 책”으로서 형상들을 허용해서도 안 됩니까?

답: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 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말 못하는 우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4] 그의 말씀에 대한 살아 있는 강설을 통해 가르침 받기를 원하십니다 [5].

[1] 신 4:15-18; 사 40:18-19,25; 행 17:29; 롬 1:23-25
[2] 레 10:1-2; 신 12:30-32; 삼상 15:22-23; 마 15:9
[3] 출 34:13-14,17; 신 12:3-4; 16:22; 왕하 18:4; 사 40:25
[4] 렘 10:5,8; 합 2:18-19
[5] 롬 10:14-17; 딤후 3:16-17; 벧후 1:19

다음은 이와 관련된 김헌수 목사님의 강설 중 일부분:

말씀으로 우리에게 나오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방법으로, 곧 말씀으로 그분께 나아오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관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하였으니까, 방법에 있어서 조금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예배를 그릇된 방법으로 드리고도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니까 이런 예배도 다 받으신다’ 하고 스스로 관대하게 생각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마음과 방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서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자기중심적인 것이 죄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2계명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2계명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과 경배의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감사하여 겸손히 믿음으로 나아가기는커녕,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수호신 정도로 격하시키는 오만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질투의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것들을 결코 용인하지 않으시고, 2계명에 세대를 이어가는 복과 저주의 약속까지 덧붙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르쳐 주신 방식대로 예배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단지 방법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랑과 경외는 그 표현 방식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법이므로, 전자와 후자를 분리해서 후자를 작은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는 큰 속임 가운데 스스로 빠져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의 방식을 결코 작은 문제로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에서 분명히 가르쳐 주신 일이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 가운데서 나답과 아비후라는 두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했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 자리에서 그들을 불로 태워서 목숨을 거두어 가셨습니다(레 10:1-2). 자신들은 정성을 다한다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제사 제도를 확 바꾼 것도 아니고 조금 다른 방식으로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오니까 그들을 다 태워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나아오면 받지 않으실 뜻을 처음부터 분명히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덜 중요하다’거나 혹은 ‘내 마음에 우상을 섬기는 마음, 자기 행복을 조금 추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은 괜찮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3』, 105-107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