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사람의 열심으로 움직이는 종교가 아니다

성경에서는 헌금에 대해서 가르치기를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고 말씀했습니다. 가령 내가 돈을 백 원만 드리고 싶었는데 천 원짜리를 드리면서 ‘아, 이렇게 천 원을 드려서 좀 아깝다’ 하는 생각이 난다면, 그런 인색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많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가 아니고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입니다. 여러분이 돈을 십 원이라도 즐겁게 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지만, 만 원을 내더라도 만일 그 사람의 마음 가운데 ‘아이고, 너무 많지만 그대로 내야겠다. 한 오천 원만 내면 적당하겠지만 돈을 뗄 것도 없고 에이, 만 원 낸다’ 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단돈 십 원이라도 즐겁게 ‘하나님이여, 이것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드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쓰시옵소서’가 아니고 ‘하나님, 이것이 내 대표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즐겁게 내야 하는 것이고 자기에게 그만한 신앙의 장성의 분량이 있으면 그 분량대로 내는 것입니다.

믿음은 요만큼밖에 안 되는데 돈은 이만큼 내면 오늘날 세속 교회는 자꾸 그런 것을 기뻐할는지 몰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고, 그런 돈을 기뻐하면 거룩한 교회는 못 되는 것입니다. 만일 내 믿음이 불과 한 십 도(十度)밖에 안 되겠거든 십 도에 해당한 만큼만 내는 것입니다. ‘내 믿음은 십 도밖에 안 되지만 교회의 수요를 보면 백 도나 내야 할 테니까 그렇게 내야겠다’ 할 때 교회가 감사히 여기고 ‘참 감사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희생을 하고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 앞에 열성을 보이십니까’ 한다면 되겠습니까? 기독교가 열성교(熱誠敎)입니까? ‘인색한 마음으로나 마지못한 마음으로 할 것이 아니니라.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전도 즐겁게 못 내겠거든 하나님 앞에 돈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부정전(不淨錢), 즉 부정한 돈을 가지고 하나님이 그 나라의 거룩한 계획을 실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운영하시지 여러분의 돈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돈으로 운영하는 것같이 생각하거나 교회가 교회의 돈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생각할 때 그 교회는 벌써 타락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만일 돈을 하나도 안 내더라도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교회를 세우셨으면 당신의 뜻대로 운영하고 나아가실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 그런 교회가 있을 필요가 없으면 하나님이 흩어 버리실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나는 부자다.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 할지라도 ‘너,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벌거벗고 눈먼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고 책망하실 것입니다.

김홍전, 사도행전 강해 제 2권: 순결하고 능력 있는 교회, 197-198쪽 (굵은 글씨는 본 블로그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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