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Gospel

아들은 다른 길이 없다고 하였다 (요한복음 14:6)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2–6

아래는 ‘다락방에서의 가르침'(Lessons from the Upper Room)이라는 제목으로 퍼거슨 목사/박사가 행한 강설 가운데 일부를 의역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은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할 것 없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말씀이고, 사람들마다 나름대로 그 말씀의 의미를 해석하고 그것을 좋게 여기는 듯합니다. 다만 그 말씀을 왜 하셨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시는 바로 뒤의 말씀 곧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다’는 예수님의 이 배타적인 발언을 접하는 순간 현대인의 완고한 저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에게로 가는 길은 여러가지며, 꼭 예수를 통해야만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해보지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나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시는 것을 그려봅시다:

“너는 누구의 이름으로 내 앞에 나오며 또 내 집에 들어오려고 하느냐?”

여기에 대고 이렇게 대답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저는 저의 길을 따라 왔습니다.”

대화는 계속됩니다:

” ‘내가 유일한 길’이라고 한 내 아들의 말을 요한복음 14장에서 읽지 않았느냐? 거기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되어 있지 않더냐?”

“예,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건 좀 배타적인 것 같아서 나름대로 길을 따라 왔습니다.”

그럼 아버지께서 이렇게 대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네 말은, 만물의 주(主)인 내가, 내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어주었을 때, 억조창생의 죄를 그에게 지우고 그에게서 낯을 돌리고 그가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치도록 두며 그 순간을 견뎠을 때, 그것 말고도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리 했다고 너는 생각하느냐? 실제로 내 아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빠 아버지, 만일 십자가 말고 다른 방도가 있다면 제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내게 구했거늘, 너는 네가 갖고 있던 복음서에서 못 봤느냐? 그런 내 아들에게 내가 ‘아들아, 다른 방도가 없다. 유일한 방도는 네가 이 잔을 마시고 그들의 죄에 대한 나의 진노를 받는 것이다. 그것 만이 그들의 희망이다. 다른 길은 없구나.’ 하며 응했을 때, 만일 다른 길이 있었다면 하늘의 있는 이 아버지가 그 방도를 틀림없이 찾지 아니했을 것 같으냐? 네 어찌 감히 내 아들을 이런 식으로 멸시한단 말이냐.”

여기에 진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흔히들 말합니다, ‘예수를 하나의 훌륭한 스승으로 알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있는 배타성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면에서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길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찾던 안 찾던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 앞에 세우실 것이고, 이것은 누구에게나 정해진 사실입니다. 그 사실 앞에서 나는 어떤 길로 그에게 나아갈 것이냐가 진짜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것 곧 복음서가 이 문제에 대해 증거하는 것은, 만일 다른 길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그 다른 길을 찾으시고 당신의 아들이 죽지 않도록 하셨으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피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시기를 우리 모두를 위하여 그리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이해를 확증하는 것이 아버지께로 오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도마의 질문에 대답하신 것입니다: “길을 알려주십시오.” “도마야, 내가 곧 길,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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