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7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작정하시고 그대로 이루어 가실 것이지만 사람이 알아야 할 일들, 알아서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셔서 그 뜻대로 순종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우리에게 계시의 말씀을 주셔서 순종하게 하신다” 하는 이 두 가지를 명심하는 것이 참 긴요한 일입니다. 신명기 29:29이 이러한 것을 종합적으로 잘 가르칩니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이런 말씀은 잘 외워 두는 것이 참 좋습니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오묘한 것, 아주 깊은 뜻, 깊은 이치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습니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하나님의 작정이란 아주 오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그 작정에 따라 세상도 지으시고 지금 이 큰 세상을 다 다스려 가시는데,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까지 다 작정하십니다. 얼마나 큰 내용입니까? 그래서 이것을 사람의 머리로는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거대한 내용인 것입니다. 오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오묘한 것이 하나님께 다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오묘한 것을 다 알고 계시는 것이고, 알고 그대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또 나타난 일이 있습니다. 계시하신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 선지자들을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도들을 통해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계시하여 주시지 않았습니까?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것은 우리의 재산입니다. 우리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말씀, 계시해 주신 내용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느냐 하면,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즉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순종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오묘한 뜻을 전부 다는 모르지만, 계시의 목적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르쳐 주시고 그 가르쳐 주신 대로 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생이 하나님께 마땅히 순종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 뜻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작정하신 대로 모든 일을 이루실 것이니 내가 서둘러도 안 될 것은 안 되고 될 것은 내가 게을러도 될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오묘한 모든 것들을 다 작정하셨을지라도 인생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일들, 거기에 필요한 것들은 또한 다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고 그대로 순종해라” 하는 것이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작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바를 알았으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을 우리가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최낙재,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강해 1”, 184-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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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생이 하나님께 마땅히 순종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바를 알았으면 그대로 순종할 것이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신구약 성경)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쳐 주신 바”라고 요약하면 옳은 것인지요? 그렇다면 과연 인생이 어떻게 율법을 지킬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인간 예수로 오셔서 그 율법을 다 이루셨음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지금도, 저는 하나님의 가르쳐 주신 바를 제대로 행하지도 못하였으며, 앞으로도 결코 제 스스로 행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할 뿐입니다.

    성경에는 의인(로마서 3:10)은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다고 기록되었는데, 율법을 지켜 행하라는 율법주의적 가르침을 강조하시는 듯하여 질문을 드립니다~

    • 먼저 율법주의 뜻을 바로 해야 하겠습니다. “율법을 지켜 행하라”는 것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최낙재 목사가 언급한 신명기 29:29에 나타나 있듯이,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표준이 율법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그렇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신자 불신자 할 것 없이 사람이라면 마땅히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왜 순종하는가?”입니다.

      역사적인 개혁파 신앙고백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은즉,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율법주의, 그리고 그 이복형제인 반법주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순종한다 (예수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 — 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 하나님의 자녀는 율법과 상관이 없다 — 이것이 반법주의입니다.

      다시 개혁파 신앙고백으로 돌아간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자녀가 되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미 자녀가 되었으니까,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와 찬송으로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십계명 서문(출 20:2, 신 5:6)을 보십시오. ‘나는 네 하나님이다’ 선언을 하시고 계명을 주십니다. 계명을 잘 지켜야 ‘내가 네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네 하나님이다’ 그러니 내 계명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사람이—특히 하나님의 사람들이—마땅히 지켜야할 표준을 가르치시기 위해 주신 것이지,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하심을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구원 받고 말고 따질 것 없이 율법에 제시된 표준은 누구나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예수께서 율법을 다 지키셨다는 것은 율법에 제시된 표준을 만족시키심으로 행위의 언약(covenant of works)에 따른 영생을 얻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으신 영생을 신자들에게 나눠주시는 것은 구속의 언약(covenant of redemption)에 따른 법정적 결과이지, 사람인 내가 율법에 제시된 표준에 따라 살아가야 할 당위를 제거해 주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끝으로 믿음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자면, 믿음에도 여러 종류(quality)가 있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고 두려워 떤다고 했습니다 (약 2:19). 믿음에 따라서는 역사적 사실을 승인하듯이 예수님과 관련된 것들을 다 인정하거나, 혹은 기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는 믿음을도 존재합니다. 성경은 그런 믿음이 구원의 신앙을 소유했다는 증거는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인정하는 것도 구원의 신앙의 증거라고 성경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증거는 오직 행위입니다. 이는 행위가 완전해야 구원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신앙은 머리나 마음 속에만 머물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는 생동력이 있습니다(갈 5:6). 누구든지 예수를 믿노라 하지만 행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은 성신께서 주시는 구원의 신앙을 소유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2. 믿음과 행함 그리고 율법에 대한 믿는 자의 자세를 지도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와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말씀(마 7:22~23)을 다시 묵상하며, 다음과 같이 깨달은 것을 정리하였습니다.

    믿는 자들은 행위의 언약과 구속의 언약에 따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며, 구원의 신앙은 율법의 실천행위로 증거된다. 율법의 행위란 오직 예수께서 이루신 것이되, 믿는 자들은 “알고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이것으로 예수께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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