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고린도전서 1:22-24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 진리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벌써 이천 년 전에 잘 가르쳤습니다. ‘기적, 기적” 하고 좇아가는 것이 로마 가톨릭교회에도 많고 신교에도 오늘날 많이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기적, 기적”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어떤 복을 얻고자 해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이 경향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열심히 좇고 하나님을 믿는 마음 같은데 하나님께서 이미 보여 주신 거룩한 뜻에는 크게 위배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곧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서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고 크게 선포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증명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교회가 대대로 그것을 믿어 오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믿고 구원을 얻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거기에서 자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장성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날마다 그 능력을 의지하여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만족할 만큼 넉넉하게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사랑이 부족합니까? 그런데 그것은 제쳐 놓고 자꾸 ‘기적, 기적”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이 바로 믿지 않는 태도가 아닙니까?

누가복음 16:19 이하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부자가 음부에서 고개를 들어 아브라함을 멀리 쳐다보면서 간청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었다가 살아난 자가 가서 자기 형제들에게 ‘이다음 세상이 어떻다’ 하고 보고하면, ‘그런 기적을 통해 형제들이 믿을 것입니다”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구원해 주십시오” 하고 청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답은 “저희에게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29절) 하였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란 그들에게 있는 성경입니다. 당시의 성경입니다. 오늘날에는 거기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도들의 교훈, 이 신약 성경이 합해 성경이 되고 있는데, 당시 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특별한 능력으로 세상에 주신 것입니다. 또한 그 성경에 담겨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능력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와 같이 이미 특별한 능력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믿고 그 능력에 의지하여 살면 족한 것입니다. 다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고 성경 안에 가르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서 구원을 얻지 못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믿으면 완전히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최낙재,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강해 1”, 300-302쪽

Leave a Reply (남기신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다만 신원이 불명확한 의견은 게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