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고난, 다른 목적

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비참함이나 죽음이라는 것을 보통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울지만, 이렇게 느끼는 사람들도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땅 위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비참한 일들을 보고 마침내 죽으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알지 못하는 한 이것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합니다. 참으로 이것으로 인해 우리가 슬퍼할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아파하고 슬퍼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고통스러운 일, 비참한 일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비참한 일이나 죽음 같은 것을 생각할 때에 그것만을 생각하고 그것만 붙들고 어떻게 해결하려고 씨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비해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면 너무 하나님과 관계하여 생각합니다. 그런 일을 다른 안 믿는 사람들과 함께 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에게서 오는 진노로 생각하는 동시에 다른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이 당하는 것으로 인해 너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폐단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전혀 하나님과 관계하여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비참한 일을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형식으로 많이 당하니까, 지진이 나면 같이 당하고, 다리가 끊어지면 같이 허공을 향해 굴러 떨어지고, 기근을 당하면 같이 배고파하니까 안 믿는 사람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진노를 당한다고 생각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같이 지진이 나고 같이 기근이 나고 같이 질병을 앓게 되고 같이 불구가 된다고 할지라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당하는 것은 아주 판이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가 회복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그에게서 진노가 거두어졌고 화목하게 된 관계로 그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려움이라든지 심지어 죽음까지라도 안 믿는 사람이 당하는 것과는 의미가 아주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사후에 당하는 징벌이라는 것도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바로 옆에서 같이 나란히 받을지라도 그 의미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119:67에서 보는 대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고백이 있는 것이고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이 진리에 맞는 고백입니다. 또 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를 배워 그것을 잘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당한 것이 그에게 유익입니다. 똑같은 비참한 사실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것이 그를 죽음으로, 나중에는 저주로, 영원한 형벌로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유익을 줍니다. 그로 말미암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이제는 돌이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새로운 길을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 결코 그렇게 좋은 데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것이고 이 현세에서 그것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마침내 죽고, 죽은 다음에는 아주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리로 들어가고 맙니다. 이렇게 사람이 그 타락한 처지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비참한 사실이 있습니다.

최낙재,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강해1”, 444-446쪽

4 thoughts on “동일한 고난, 다른 목적

  1. “불신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비참함이나 죽음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요 저주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이 모든 겪게되는 일들(스스로 행한 부정한 행위나 애매하게 당하는 불이익을 막론함)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은혜로서 종국적으로 축복이요 하나님의 은혜이다”라고 요약하면 틀림이 없는 것입니까?

    • 스스로 행한 부정한 행위에 대한 고난은 ‘죄’로 인해 받는 ‘벌’입니다. 그것을 통해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넓은 의미에서는 ‘은혜’로 볼 수 있겠으나 ‘연단’을 위한 시련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예수께서 자기 피를 값으로 주시고 건지신 백성들은 받드시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요 6:39). 그래서 신자들에게는 고난이 은혜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신자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셨을 때 “실제로” 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actual atonement). 신자인 내가 오늘 범한 죄에 대한 ‘벌’을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실제로 받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내게 하나님께서 또 ‘벌’을 내리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벌을 이중으로 내리신다는 뜻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형벌이 효과가 없다고 하는 셈이지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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