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장

(알림: 이 문서는 칼빈의 로마서 주석과 함께 한 로마서 공부의 짤막한 기록입니다.)

2 장에서 유대인들도 율법을 어겼다고 얘기함. 3장에서는 재확인: 9-18절.

2절: “To begin with” (ESV) “First” (KJV) — Calvin interperets not as numbering but meaning “chiefly” 무엇보다도… 할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중요한 표이다.

3절: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이방인 보다 더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믿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 되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4절: 우리의 죄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미쁘신 말씀을 훼손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됨을 나타내는데 쓰인다. “But Paul has followed the Greek version, which answered his purpose here even better. We indeed know that the Apostles in quoting Scripture often used a freer language than the original; for they counted it enough to quote what was suitable to their subject: hence they made no great account of words.” (Calvin, Commentary on Romans)


5–8절: 본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우리의 죄악도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데 사용 되었다면 우리가 죄를 지어도 된다든지 하나님의 심판이 불의하다’는 주장을 타매함.


9–18절: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재확인

19절: 여기서는 특히 유대인들이 들고 나오기 쉬운 변명을 논박한다. 율법을 지니고 있다면 더더욱 율법의 정죄 아래 있다. 고로 율법이 없는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율법이 있다고 해서 정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여기서 사도는 율법을 칭의 수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를 20절에서 확인한다.)

20절: 그러므로 우리가 내리는 결론은 (율법이 없으면 당연히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고) 율법이 있어도 그것을 완벽히 지킴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 이를 10–18절이 증거한다. 특히 율법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를 나타내 보인다는 점에서 인간이 의를 발생시키려 한다면 율법을 다 지키는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여기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고 죄를 깨달을 뿐이라는 선언은, 혹 인간이 의를 얻으려면 그 의의 조금치라도 인간 스스로에게 의존할 수 없고 100% 하나님께서 무엇을 마련하시는 방법 밖에 없다는 선언으로 이해해야 한다.


21–24절: 그러나, 하나님을 찬송할찌니, 그 불가능한 율법을 통한 의로움이 아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의를 덧입는 도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고, 이는 토라와 느비임 곧 구약 성경에서 이미 증거된 바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 중 하나는 우리를 복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지 율법을 통해 영생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복음 외에 다른 의가 나타난 일이 없다. 율법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착각이다.

우리의 불의를 제거하고 부족한 의를 채우기 위해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의 그 무엇도 아닌, 완전히 우리 밖에 있는) 예수님을 보내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값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오직 그렇게 마련한 하나님의 의 곧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과연 의롭다 하심을 입혀주신다. 오해를 막기 위해 “값 없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칭의를 위한 값을 다 지불하신 것이지, 우리가 무엇을 조금치라도 제공한 것이 아니다; 비유컨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입장권이라고 한다면, 그 표를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들여보내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근거는 결국 입장권에 있는 것이지 우리의 믿음이 근거는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7절의 대답을 보라!)

25절: 그랬을 때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 분의 피로서 우리의 죄책을 없이 하사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가로 막는 것을 제거 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신 것이다. 곧, 우리에게 하나님이 마련하신 의를 나타내시기 위해 그리스도는 피를 흘리신 것이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지 않으셨다면, 당장에 우리는 다 멸망했을 것이고, 얼마나 하나님이 의로우신지만 드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사 (26절에서 더 설명되겠지만) 우리를 위한 칭의도 마련하신 것이다.

26절: 그리스도에게서 죄값을 받으셨기 때문에, 신자들을 의롭다 하신 하나님의 판단은 정의로운 것이다. “이 때”라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 때에 이렇게 마련하신 하나님의 의가 환요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절에서 “하나님의 의”의 이중적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곧 ‘불의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그리스도의 의’라는 측면이고, 또한 ‘불의와 의의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신 하나님의 의롭고 지혜로운 대답’이라는 측면이다.


27–28절: 두 가지 법이 등장한다. 행위의 법과 믿음의 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법칙 (rule) 또는 언약이다. 행위의 법이란 우리가 무엇을 함으로써,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심리적이든, 우리의 그 무엇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신다는 법칙이다. 그러나 복음은 그것과는 정반대에 있는 것이, 곧 우리에게서 아무런 근거를 찾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마련하신 것을 입혀주시는 법칙인데, 그 구원을 입히시는 (근거가 아닌) 수단 또는 방도가 믿음이기 때문에 “믿음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이 따르는 법칙이다.

29–30절: 이 법의 적용 대상은 유대인/이방인의 구별이 없다. by faith… through faith… 언약에 들어오는 사상이 배경에 깔려 있다. (유대인은 조상으로부터 받았다면, 이방인은 믿음으로 들어온다.)

31절: 그렇다고 해서 율법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오해는 율법을 구원 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기는 오해에서 기인한다. 처음 부터 우리는 율법을 구원의 방도로 대한 것이 아니므로, 율법의 행위 밖에서 칭의를 얻었다고 해서 율법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본래 의도가 소멸 되었다고 볼 이유가 오히려 없다! 율법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를 드러내는 것이 그 기능인데, 복음은 우리가 그 요구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율법을 우리의 삶을 통해 세우는 것이다. 율법을 구원 받을 수 있는 방도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다른 면으로 보자면 우리가 율법으로 구원 받은 것도 아니므로 율법의 정죄로 우리의 구원이 취소될 수가 없다. 이 정죄란 율법은 “하나님의 요구를 드러낸다”는 율법의 기능이 불의한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의를 입고 있는 신자들에겐 전혀 적용될 여지가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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