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m,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헌상 | Offering

    기독교는 사람의 열심으로 움직이는 종교가 아니다

    성경에서는 헌금에 대해서 가르치기를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고 말씀했습니다. 가령 내가 돈을 백 원만 드리고 싶었는데 천 원짜리를 드리면서 ‘아, 이렇게 천 원을 드려서 좀 아깝다’ 하는 생각이 난다면, 그런 인색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많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가 아니고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입니다. 여러분이 돈을 십 원이라도 즐겁게 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지만, 만 원을 내더라도 만일 그 사람의 마음 가운데 ‘아이고, 너무 많지만 그대로 내야겠다. 한 오천 원만 내면 적당하겠지만 돈을 뗄 것도 없고 에이, 만 원 낸다’ 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단돈 십 원이라도 즐겁게 ‘하나님이여, 이것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드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 가정 | Family,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헌상 | Offering

    교회와 가정의 재정 운영

    가정은 (가시적) 교회의 가장 작은 단위라고 할 수 있으나, 교회에 적용 되는 약속 혹은 원칙들이 고스란히 가정에 다 적용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읽을 때 유의할 부분). 아래는 재정 운영에 관한 김홍전 박사의 언급이다. 내용도 좋지만, 이런 것들은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이 자라면서 그 나라의 법도들을 배워야 하듯 공부가 필요한 부분임을, 그리고 거룩한 나라의 법도들이기 때문에 사람의 똑똑함으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성신께서 경건 가운데로 이끄시면서 체득하게 하시는 것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경영하신다는 것을 우리의 생활로 증거해야 교회가 가장 거룩한 본질을 잘 나타내는 한 증좌(證左)가 될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교회를 사람의 지혜로 운영하는 것같이 적어도 사람의 지혜가 하나님의 교회에 가담해 있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더…

  • 신학 | Theology,  헌상 | Offering

    Lessons from the Grain Offering

    (Thoughts after reading Chapter 8 of “On Offering”, Vol 1, by H. C. Kim) In my child days, I remember seeing people bringing rice to church for offering. This is not so common where I am now; probably the most common material we see brought for offering would be money. Money is closely linked to our daily life; it represents potential for various things. In that sense the nature of the monetary form, which is common for offering in our day and age, is closest to the Grain Offering (Leviticus 2). Grains are used daily and it produces energy for our life, so it represents potential for various works. Another…

  • 기도 | Prayer,  헌상 | Offering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 개인의 어려운 사정과 슬픈 사정을 그냥 고(告)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일에 관여를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명확하게 붙이지 않은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들으실 만한 자격이 있다고 자기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간 사람은 아담 이래로 하나도 받으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를 통해서 항상 무자격을 자격 있게 인정하신다는 속죄, 곧 하나님의 칭의의 사실이 늘 붙어다녔습니다. 그 사람을 보지 않으시고 그가 드린 제물이 그를 대신해서 죽고 피를 흘렸다는 사실의 터 위에서만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제사를 드려 달라고 제물을 줄 때도 반드시 드리는 사람이 제물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해서 “이것이 나입니다” 하는 자기를 대신 표징하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이 양이 자기를 대신해서 죽으신다는 것은 본래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