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tin Luther
    복음 | Gospel,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칭의에 대한 바른 이해는 참된 성화로 이끈다

    내가 수사(修士)였던 시절에는 내 자신이 철저하게 버림 받은 자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는데, 곧 내 육신의 정욕을 감지할 때 그랬습니다. 즉 그 어떤 악한 활동이라도, 혹은 육체적 정욕, 격노, 증오, 또는 어떤 형제를 향한 시샘 등이 활동하는 것을 느낄 때였습니다. 내 양심의 가책을 달래고 잠재우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육신의 색욕과 정욕이 항상 재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쉴 수가 없었고,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끊임 없이 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네가 저지른 이 죄 또는 저 죄로 보건데 너는 시샘, 성급함, 그리고 기타 다른 죄악으로 오염 되어 있다; 그러므로 네가 이 거룩한 수도회에 가입한  것은 헛된 일이고, 너의 모든 선행도 무익하다.’ 그때 만일 내가 바울의 다음 문장들을 바르게…

  • 김성수 목사
    구원 | Salvation,  배도 | Apostasy,  복음 | Gospel,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하나님 나라의 법도 | The Law

    김성수 목사의 반법주의 – 후기

    김성수 목사가 개척했다고 하는 서울 서머나 교회 홈페이지에 가면 김성수 목사가 북미주개혁장로교단(Christian Reformed Church)의 목사였다고 적어놓고 또 “개혁주의 교리를 바탕으로” 설교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래서 김성수 목사가 역사적인 개혁파 신앙고백과 그 신학에 충실한 목사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전 글에서도 지적했듯 김성수 목사는 구원과 율법에 대한 개혁주의 신앙고백과 그 신학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과 가르침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잘 알려진 반법주의의 그것이다.

  • 김성수 목사
    구원 | Salvation,  배도 | Apostasy,  복음 | Gospel,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하나님 나라의 법도 | The Law

    반법주의(antinomianism)의 예: 서머나 교회 김성수

    올해 초 본 블로그에서는 김세윤 교수의 가르침 속의 율법주의의 한 양상을 살필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는 반법주의의 한 양상을 살피고자 하는데, 서머나 교회의 (故) 김성수 목사의 가르침을 놓고 보고자 한다. 율법주의와 반법주의는 마치 반대인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과 당신의 법을 훼손한다는 점에서는 배 다른 형제와 같다.

  • 구원 | Salvation,  복음 | Gospel,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요한1서 3:1-3)

    요한1서 2장 24-29절을 놓고 에서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가를 배웠다. 요한1서 3장 1-3절과 함께하는 이번 강설에서는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을 원하도록 만드는지 상고한다. (강설 녹음 연결 고리)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도록 이끄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비류 없는 사랑이다 (1절).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9) 그 사랑은 그 어느 것과도 비할 수가 없는 사랑이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위치로 옮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는 호세아 1:10의 말씀을 이루신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

  • bm,  복음 | Gospel

    우리의 삶은 복음이 아니다 (Why You Can’t Be The Gospel)

    신자는 복음을 믿는 자이고, 신자의 삶은 그 결과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복음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복음을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약을 먹고 치료 받은 사람이 자기의 생활이 약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우리가 약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큼 앞뒤가 안맞는 소리이다. 어불성설이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활하게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우리 삶이 복음이라고 말함으로써 복음의 본질을 흐리거나 진짜 복음인 그리스도께 누가 되기 때문이다. 천하 인간 중 아무도 “날 보고 그리스도를 배우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다. 그런 교만이 따로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성화가 진행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흠 없는 의(義) 앞에서는 누더기 걸레와 같고 지옥의 영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날마다 회개하고 노력하는 것을 본받으라”고…

  • bm,  복음 | Gospel,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가

    지난 3월 30일 주일 강설은 요한 1서 2장 24-29절에 대하여였고, 주제는 “Abiding in Christ”(그리스도 안에 거함)이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강설 녹음 연결 고리) 요한1서를 읽어 나가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면 서두부터 사도 요한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우리가 당신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마땅함을 이야기했다. 그 내용을 읽고 있노라면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의 중요성을 충분히 느끼다 못해 그렇다면 ‘어떻게 그 교제 가운데 거하는가?’라는 질문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대답을 사도 요한은 이제 2장 24절에서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주의 말씀을 간직하는 자의 모습을 잘 그린 것이 시편 119편이다. 골로새서 3장 16절을 보면 이를 위해 서로 권면하고 또 시편을 부를 것을 권하고 있다. 사람은…

  • 복음 | Gospel

    “복음을 살아낸다”는 어불성설 (You Can Not Live The Gospel)

    “복음을 살아낸다”(Live out the gospel)는 표현은 복음에 대해 본질적인 오해, 혹은 단순히 언어의 애매한 사용이다. 이 표현이 유행하다보니 우리는 그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선한 동기를 가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언행 혹은 사고방식을 우리는 버릴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가장 선한 동기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우리가 복음을 “의지해서” 살 수 있고, 복음에 “근거해서” 살 수는 있어도, 복음 그 자체를 살아낼 수는 없다. 이것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복음은 그 본질에 있어서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1 내 삶을 통해 하신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이루신 일이기 때문이다.2 복음은 “전도”(preaching)을 통해 전달 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소식”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