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a Gratia (오직 은혜)

아래는 제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관심 있는 분들과 나누기 위해 정리한 것들입니다. 고백하건데 저는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Soli Deo Gloria!


“여러분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4:7, 표준새번역)

오직 은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사역으로서 거기에 사람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으며, 사람에게서 근거를 찾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이다“.

종교개혁 당시 이러한 개혁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에라스무스는 ‘자연인은 비록 타락하였지만 약간이나마 남아 있는 선한 양심으로 구원에 필요한 믿음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구원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마련하시고 그것을 취하는 것은 사람 몫’이라는 합작설(synergism)이다. 이에 대한 루터의 반박문이 그 유명한 <노예의지론 (Bondage of the Will)>인데 거기서 그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며,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단독설(monergism)을 주장하였다. 물론 이것은 루터 뿐만이 아니라 당시 개혁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일찍이 어거스틴이 단독설을 주장하였고, 그것을 교회가 승인한 것이 ‘어거스틴-펠라기우스 논쟁’ 사건이다.

이러한 단독설의 근거로 종종 등장하는 성경 구절로는 다음이 있다.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44)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12,13)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다음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함께 나눈 구원에 관해서 편지를 써 보내려고, 여러 가지로 애써 준비를 해 왔는데 이제 여러분에게, 간곡한 권고의 편지를 쓸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에게 한 번 결정적으로 전해진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여러분이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유다서 1:3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오직 은혜'(Sola Gratia)의 자연스러운 결론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重生先于信心

기독교 가르침과 관련하여 ‘믿음으로 거듭난다’는 표현을 쉽게 접할수 있는데, 위에서 이미 언급한 사실에 따르면 믿었기 때문에 거듭난 것이 아니라 거듭났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음을 읽을 수 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로 올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요한복음 6:63–65; 표준새번역)

이해를 돕기 위해 위 본문의 영어 번역을 아래 추가한다:

It is the Spirit who gives life; the flesh is no help at all. The words that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life. But there are some of you who do not believe …… This is why I told you that no one can come to me unless it is granted him by the Father.” (John 6:63–65; ESV)

이 말씀은 요한복음 1:13의 말씀과 상통한다—즉 새 생명을 주시는 것은 성신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거기에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연인이 도울 수 있는 것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성신의 새 생명 주심 곧 중생함이 믿음에 선행한다는 것을 우리는 아래의 말씀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사람 속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요, 그런 사람은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런 일들이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2:11–14; 표준새번역)

 

예지예정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은 ‘먼 과거에 앞날을 내다보시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아니 믿을 것인가를 미리 아셨기 때문에 그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라는 이론을 펴기도 한다. 이것이 소위 예지예정론인데, 이 이론의 두 가지 오류로 다음을 지적할 수 있다:

  • 첫째, 위의 요한복음 1장의 말씀에서 보듯이 구원에는 사람의 뜻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것을 망각했으며
  • 둘째, 과거/현재/미래란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서도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미래를 바라보시듯”이 행하시는 것이 아님을 잊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이란 시간을 초월한 신의 영역에서의 일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지예정론은 “나는 믿었지만 너는 믿지 않았다”는 인간적인 자랑을 제공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자랑할 수 없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8–9)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선택

어떤 사람들은 ‘구원이 오직 은혜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사람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무시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반론 역시 두 가지 오해에 기인하는데, 그것을 바로잡자면 다음과 같다:

  • 첫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구원의 신앙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의 ‘선택권’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권은 하나님께서 주셨다. 문제는 사람의 영혼이다. 자연인의 영혼은 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의 자유로운 선택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싫어하는 쪽으로 진행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2:14) 물론 ‘선택권’이 있다는 것은 ‘책임’을 부른다.
  • 둘째, 방금 설명했듯이 성경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유선택권’을 가르칠 뿐, 사람의 의지가 그 무엇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다는 식의 ‘자유의지’를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의지는 죄의 노예 노릇을 한다는 ‘노예의지론’을 가르친다. 아더 핑크(Arthur Pink)의 비유를 빌리자면, 사람이 망치를 내리칠 때 손으로 내려치지만 그 손을 다스리는 것은 뇌인 것 처럼,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의지이지만 그 의지를 다스리는 것은 사람의 마음(heart)이다. 그런데 자연인의 마음은 죄의 다스림을 받는다.

 

중생, 성화, 영화 — 모든 것이 오직 은혜로

위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에 대하여 얘기했지만, 중생 다음에 하나님의 자식 답게 자라가는 ‘성화’ 역시 오직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거기엔 우리의 의지력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을 뿐이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라디아서 3:2,3,5)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16-17)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2-4)

이처럼, 구원과 관련된 전 역사가 사람과 하나님의 합작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임을 Sola Gratia는 표현하고 있다.

 

사람의 교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이사야 64:6) 하는 성경의 선언과는 달리, 사람은 끝까지 자기에게 무슨 공로라던지 조그마한 의(義)가 있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 까지 “나는 믿었지만 너는 안 믿었잖은가”하는 차별을 두고 싶어 한다. 또는 하나님의 자식 답게 살아가는 성화에 있어서 조차 그리스도의 공효 외에 어떤 특별한 종교적인 방도라던지 자신의 특별한 종교심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다” 하였다 (요한계시록 7:10). 그 누구도 자랑할 수 없다; 믿음의 시작에서부터 완성까지 오직 주께서 이루신다:

“Therefore, since we are surrounded by so great a cloud of witnesses, let us also lay aside every weight, and sin which clings so closely, and let us run with endurance the race that is set before us, looking to Jesus, the founder and perfecter of our faith,” (히브리서 12:1,2 E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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