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언약 (The Covenant of Grace)

아래는 제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관심 있는 분들과 나누기 위해 정리한 것들입니다. 고백하건데 저는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Soli Deo Gloria!


  • “내가 너로 [뱀으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5)
  • “네 [아브라함의]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창 22:17–18)
  •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신 18:18–19)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39)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 8:56)
  • “”믿음으로 모세는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히 11:24,26,28)

우리는 위에서 인용한 창세기 3장 15절이라든지, 창세기 22장 17–18절, 그리고 신명시 18장 18–19절 말씀들을 읽으면서 구약 성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자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 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약속 되어 있고, 또한 약속의 그 자손이 우리의 구원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약속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위에서 인용한 요한복음 5장 39절과 8장 56절과 같은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성경(특히 구약성경)의 이 중요한 약속들이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고, 예수님이 약속의 그 자손임을 증거하셨다.

이처럼, 타락 직후로부터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고 간직해 온 이 중요한 약속, 간단히 말해 하나님께서 구원의 자손을 보내시고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이 은혜로운 약속을 ‘은혜의 언약‘(covenant of grace)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이 은혜의 언약을 믿은 사람들과 그들에게 이 은혜의 언약이 점점더 구체적으로 계시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신약성경은 약속대로 오신 언약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 언약을 이루셨으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현실화 되어 나가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경은 약속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이며, 그에 대한 약속인 은혜의 언약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언약을 여러번 확인하여 주심으로 새롭게 하심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의 언약을 역사 속에서 여러번 재언급하시고, 그 때 마다 조금 더 살이 붙은 표현으로 계시해 주셨다는 것을 발견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약속의 자손에 대한 맨 처음 언급은 앞서 본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이다. 그 다음 창세기 18장 18–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사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고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따라 한 나라를 건설하시고, 거기서 천하 만민이 얻을 복이 흘러 나올 것임을 밝혀주셨다. 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건설하시려는 그 나라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도를 지키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또한 밝히셨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 칭하실 하나님의 나라를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 후 창세기 22장 17-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시사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라고 하심으로 첫 조상 아담이 믿었던 “여자의 후손”이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나올 것임을 말씀해주셨다. 이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셨다.

우리가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지금 나열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모두 똑같은 말씀들은 아니지만, 각 약속 속에 들어 있는 뼈대가 되는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약속과 약속의 그 자손’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하나님께서 동일한 언약 곧 은혜의 언약을 여러번 확인하여 주심으로 새롭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의 언약을 새롭게 확인해 주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장면이 출애굽기 19장에 나온다. 이집트(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시고 시내산 밑에서 공식적으로 하나의 나라로서 세워주시는 장면이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장면이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운 언약 때문이라고,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때문임을 출애굽기 2장 24–25절은 말한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것이 언약을 지키는 것임

앞서 우리는 아담 때 부터 믿어 온 동일한 은혜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여러번 새롭게 하셨다는 것을 보았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신 것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새롭게 해주셨던 그 은혜의 언약을 이루어 나가시는 일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보았다 (출애굽기 2장 24–25절). 과연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밑에 모인 이스라엘 민족을 “야곱의 집”이라고 부르셨다 (출애굽기 19장 3절).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시내산에서의 언약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약속으로서 은혜의 언약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틀린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킨다는 것과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똑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 출애굽기 19장 5–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지켜야 언약의 백성으로 살게해주신다고 하셨다.
  2. 같은 장 8절에 보면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겠다고 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언약공동체로 출범하게 된 것이다.
  3. 그런 후에 출애굽기 20장 이후에 나오는 계명들은 하나님의 언약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실정법을 내리시는 것이다. 계명을 지켜야 언약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약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자체에 하나님께서 그 분의 은혜와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 만이 있지, 우리 보고 무엇을 하라는 내용이 없다. 즉 구원과 관련된 이 복된 약속을 우리로서는 그저 믿는 수 밖에 없지 달리 무엇을 할 것이 없다. 그렇다, 사도 바울은 은혜의 언약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로마서 4장 16절)

구체적인 예로서 아브라함의 아들 중에 언약의 백성 가운데서 끊어진 예를 상기해 보자. 그것은 다름 아닌 이스마엘이다. 사도 바울이 그에 대해 성령으로 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4장 22–31절). 이스마엘은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쫓겨났다.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 대로 이삭이 태어났을 때, 특히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사람들은 큰 기쁨 가운데 있었지만, 이스마엘은 이삭을 조롱했다. 이로 보건데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마음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러므로 믿을 수도 없었다. 이스마엘이 쫓겨난 것이 하나님의 어떤 명령을 어겨서가 아니었다.

물론 이것은 그리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는 약속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약속이 일방적인 선언이냐, 아니면 쌍방간의 의무에 대한 것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네가 시장에 가서 국거리를 사오면 내가 국을 끓이마”하는 식의 약속이라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식이 해야 할 것은 국거리를 사오는 것이 되겠지만, 부모가 “내가 시장에 가서 국거리를 사와서 국을 끓여주마” 하는 일방적인 약속이라면 자식이 부모의 약속을 믿고 국을 끓여주실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 약속을 마음 속에 지키는 것이다. 즉 ‘지킨다’는 것에는 ‘명령을 따른다’는 식의 의미도 있지만, ‘믿고 간직한다’는 의미도 있다.

시내산에서 은혜의 언약을 새롭게 하신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모세 시대에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게하셨다는 이상한 이론도 돌아다니는데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잠시 적고 넘어간다.

  •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면 살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장 20절)
  •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것을 다 지켜서 생명을 얻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라디아서 3:21)
  • 오히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표준에 심히 못 미친다는 것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갈라디아서 3:24)
  • 과연 율법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죄 없이 함을 받으려면 나 자신의 그 무엇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을 가르친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이 말씀에는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는 피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속죄의 법과,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그 속죄 제물을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다는 복음을 본다. 사람이 무엇을 준비해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을 사람이 의지하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 준다.
  • 구약의 선지자들 역시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을 유일한 방법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임을 가르쳤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2장 4절)

예레미아 31장의 ‘새 언약’ 역시 은혜의 언약을 새롭게 하신 것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은혜의 언약을 다시 선언하시고, 때로는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언약을 새롭게 하신 것을 보았다. 그것의 한 예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임을 보았다. 그런데, 예레미아 3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또 다시 언약을 새롭게 하실 것임을 말하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아 31:31–33)

여기서 언급하신 ‘새 언약’의 핵심적 내용은 여전히 은혜의 언약임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알 수 있다:

  • 새 언약의 큰 내용은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위에서 보았듯이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내용이었다 (창세기 18장 18–19절).
  • 히브리서 8장에서 보듯이 이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졌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이루어 주신 것이다.
  • 이 새 언약의 수혜자인 우리는 다름 아닌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상속자라고 로마서 4장 16절은 가르친다.

그러므로, 예레미아 31장에 언급된 새 언약은 은혜의 언약과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은혜의 언약을 새롭게 하신 것이라는 의미에서 “새 언약”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에 조금 더 풍성한 내용을 덧붙여서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다름 아니라 예전 시내산에서 새롭게 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능력’의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하신 말씀이 없으셨는데,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기록하시겠다는 독특한 은혜를 말씀하셨습니다.

 

언약의 그 자손, 예수 그리스도

이처럼 은혜의 언약은 첫 조상인 아담 때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유일한 구원의 언약이다. 그 언약을 믿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이룰 자손이 왕이요,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로서 하나님 앞에 영원히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다 (신명기 18:18–19, 삼하 7:12–16, 시 110:4).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약속된 그 자손임을 증거하셨다 (요한복음 5:39, 8:56). 성경 역시 수차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약속된 그 자손이라고 증거한다 (누가복음 1:72; 마태복음 1:1,21; 히 10:12–18). 특히 예수께서는 마지만 만찬의 자리,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그 분의 피로 그 분에게 속한 사람들의 죄를 씻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 되는 은혜의 언약을 이루실 것임을 선언하셨다 (고린도전서 11:25).

 

성경 전체를 통해 흐르는 유일한 구원의 언약

과연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를 위해 다시 살아나시사 영원한 왕, 제사장,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중보적 왕권을 행사하시는 새 시대를 여셨다. 그로써 그림자 역할을 하던 모세적 제도, 다시 말 해 예수님 오시기 전의 언약공동체에게 주셨던 여러가지 실정법과 제도에 종료를 고하셨다. 그렇다고 예수님 오신 이후 새롭게 된 언약공동체 곧 신약 교회가 구약 교회와는 전혀 다른 언약 아래 있는 것은 아니다. 신구약 교회는 형식만 다를 뿐 본질은 동일한 은혜의 언약 아래 있는, 한 백성, 한 몸이다 (로마서 4:16; 11:17–18; 갈라디아서 3:7).

2 thoughts on “은혜의 언약 (The Covenant of Grace)

  1. 신학의 한 분과인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에서 중요한 도서들이 있어서 읽어봤을 수도 있지만 추천하려고 ~ ^^

    개론서 Biblical Theology: Old and New Testaments by Geerhardus Vos ‘성경신학’으로 번역.

    언약/계약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신구약을 통일성있게 연결하려는 시도. 위에 있는 내용의 기본적인 부분들이 이 책에 포함되어 있는 듯. The Christ of the Covenants by O. Palmer Robertson ‘계약신학과 그리스도’로 번역.

    네 가지 중심 주제를 통해서 신구약을 통일성있게 보려는 시도. God’s Design: A Focus on Old Testament Theology by Elmer A. Martens ‘하나님의 계획’으로 번역.

    Covenant and Creation: A Theology of Old Testament Covenants by William J. Dumbrell ‘언약과 창조’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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