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강해 2
    신앙고백 | Confessions

    선지자로 다가오시는 예수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4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24문은 그리스도의 선지자적 직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4문: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의 직분을 어떻게 행하십니까? 답: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1 그분의 말씀과2 성신으로3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아래는 이와 관련된 최낙재 목사의 강설 중 일부분: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롬 10:14). 사람이 듣지 않고 어떻게 믿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 여기 듣는다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무슨 소식을 들었다든지, 누가 예수님에 대한 말을 들었다든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표시하자면 ‘to hear about him(그 사람에 관해 들었다)’이 아니라 ‘hear him’입니다. 여기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가 한 말은 ‘hear him’ 곧 ‘그 사람을 직접 듣지도 않고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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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m,  예배 | Worship,  하나님 나라의 법도 | The Law

    예수님을 형상을 왜 그리면 안되는가

    질문 1: 성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계명을 어기는 것일지라도, 그리스도의 경우 인성(人性)을 취하셨으니 만큼 형상을 만들어도 되지 않습니까? 대답: 아닙니다. 에피파니우스는 교회에 걸린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고 산산히 부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은 당신의 신성(神性)이 인성과 결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신성을 그려서는 안 되는 우리가 당신의 인성을 그리는 것은 죄이며, 당신을 반쪽짜리 그리스도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우리가 분리시키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그리스도 되게 하는 것 중 우선 되는 것을 제(除)하는 것입니다. — 토마스 왓슨, A Body of Practical Divinity, 1692 (블로그 저자 번역) 96문: 제2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고 [1],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서 명하지 아니한 다른 방식으로 예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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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 | Salvation,  복음 | Gospel

    예수님의 중보: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 9, 12절)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드리신 중보 기도 가운데 일부이다. 이 간구 가운데 시몬 베드로는 포함 되어 있지만 가룟 유다는 아니었다. 둘 다 예수님을 배신했지만, 베드로는 잃어버림 바 되지 않고 돌아 오고 유다는 멸망으로 떨어진 것은 예수님의 중보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처럼 예수님의 중보는 효과적이다; 100% 효과적이다; 그래서 그 분에게 속한 자들은 영생을 잃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심이 좋아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중보가 비류 없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 R.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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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남녀평등에 대한 예수님의 시각

    누가복음 8장 1–3절에는 예수님께 공궤를 하며 사역을 돕던 여인들이 기록되어있다. 그 기록을 보면 그들의 남편이 (혹 있다면)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느냐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지 않다. 이 여인들은 남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께는 이 여인들이 그 분의 사역을 직접적으로 돕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이 없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확대해석하여 직분에 남녀의 구분이 없다고, 예를 들어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역할 구분이 없다고 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고 유업으로 받는 일에 있어서는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접근은 뭐든지 피상적으로 제도를 통해 고치려는 현대인들과는 전혀 다른 예수님의 접근법이자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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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하나님 나라 | Church & Kingdom of God,  구원 | Salvation,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신학 | Theology

    예정과 종말을 상고하는 유익 (히브리서 12:18–29)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천당과 지옥이라는 상벌을 놓고 종교행위를 강요한다고 오해하나,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하나님의 택하심을 ‘이미 받은 자’라고 가르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믿기만 하면 앞으로 뭔짓을 해도 천당간다 가르친다고 오해하나, 성경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선택이야말로 가장 거룩한 삶을 위한 가장 큰 동기가 됨을 가르쳐준다. 이것이 예정과 종말을 상고하는 유익 중 하나이다. 히브리서 12장 18–29절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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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 Theology

    하나님이 아니 계신 곳이 없다면 지옥에도 계신다

    아무도 지옥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신학자들 중에는 묘한 말로 참된 가르침을 가리우는 자들이 있다. 뉴스앤조이의 톰 라이트의 지옥관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학자들의 특징은 지옥을 ‘하나님과의 단절’, ‘하나님의 방임’, 혹은 ‘하나님의 부재’ 장소로 소개한다는 것이다. (그의 책을 직접 읽지는 않았으나, 기사가 정직하게 쓰여졌다는 가정 아래 파악한 것은 그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큰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아니 계신 곳이 없다는 것이다 — 설령 지옥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 요한계시록 14:10 위의 굵은 글씨는 졸인이 강조한 것이다. (누가복음 16:23의 예수님 말씀과 비교해 보라.)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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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령한 생활 | Spiritual Life

    내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간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의(義)의 표준이신 예수님, 그리고 내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 둘을 놓고 보았을 때 나는 내가 경멸하는 사람에 훨씬 (비교가 안 되게)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실상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저녁 예배 시간에 일깨워 주신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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