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 Salvation,  복음 | Gospel

단지 종교적 사실을 아는 것뿐으로는 (역사 신앙)

믿어야 할 것을 믿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신앙의 내용은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중요한 종교적 사실을 믿는다는 것이 그대로 구원의 신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 이 말씀은 사람이 훌륭한 내용을 믿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대로 그의 구원의 보증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주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시고 이 세상에 계실 때, 귀신 들린 많은 사람들에게도 접근하셨다. 예수님께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에는 예수님이 참으로 어떠하신 분인지를 잘 알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님을 바르게 대접하지를 못하였다. 오히려 귀신 들린 사람들 편에서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즉시 깨닫고 그렇게 고백하였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성경 말씀에서 때때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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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성경 해석의 권위자로 자인하고 있던 바리새인 랍비들은 예수가 누구신가를 바로 알지 못하고 로마 사람들의 손을 빌어 예수님을 사형받게 하였다. 그러나 귀신들은 예수님을 보자 즉시 예수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저희들을 통치하실 대권을 가지신 분임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무서워 떨기까지 하였다(약 2:19). 그러나 귀신들의 이러한 지식이나 고백, 또는 두려워 떨었다는 것이 그들을 구원한 것은 아니다.

일찍이 유대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니고데모는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확신하고 예수님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요 3:2)라고 고백하였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었다. 예수님은 확실히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시다(참조. 요 5:24,6:38,12:44-45,13:20). 바리새인이요 교법사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사실을 아무리 확지하고, 따라서 그렇게 믿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에 의하여 그가 구원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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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복음을 알고 그것이 바른 도리임을 인정하고 사람들에게도 그러함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이 그 사람의 구원의 확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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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도 복음 내용의 초보는 알고 있다고 자인한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오늘 현재 그것이 우리들에게 아무 효과도 가져오지 않고 의의도 갖다주지 않고 있다면 우리들은 참 구원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나와 복음과의 관계가 이러한 상태에 있으면, 신앙이라 할 것이 내게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아니라 헛된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 실증할 수 있는 확실한 사실이 수반되는 자각 있는 지식을 기초로 한 신앙이 참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요, 이것이 열매 있는 신앙이다. 그 이외에는 모두가 헛된 신앙이다.

역사상에 있던 예수님의 생애와 사업을 인정하고 또 스스로 그것을 남에게 가르쳤다고 해도 그것이 구원을 가져오는 신앙은 될 수 없다. 혹은 역사적 기독교 교리를 그대로 틀림없이 받아들여 지지하고 전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아니다.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인 줄 생각하고 그것을 유지한다면 그야말로 심히 위험한 일이다.

— 김홍전, “복음이란 무엇인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