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 Salvation,  복음 | Gospel,  언약신학 | Covenant Theology

구원이란 무엇인가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살리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

사람은 원래 행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거나, 그런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이 죄 없는 아담의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짓기 전의 아담을 그런 자리에 놓아두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약은 “내가 네게 명령하는 것을 틀림없이 다 지켜라. 그러면 너는 살리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생명을, 더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네 현재의 생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아담은 그렇게 갔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가도록 하기 위해서 이것이 내가 네게 명령하는 것이다. 그것은 짐을 지라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일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저기 선악 실과를 가서 따먹지 말아라. 그것 하나를 명령한다. 이 명령을 네가 지키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따라서 아담은 그것을 먹으러 가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위치에 놓아 주셨습니다. 무엇을 힘써서, 땀흘려 가면서 이루어 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 가든지 쳐다보든지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따먹지만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부패한 음식 처럼 작은 부패가 전체를 버리게 만들었음

그러나 사람은 역행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랴 싶어서, 따먹고 싶어해서 따먹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부패하고 타락한 위치, 즉 죄로 말미암아 오염된 위치, 죄책을 짊어진 위치에 있게 됐습니다. 죄책을 지고 죄의 오염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오염은 부패이고 그것은 동시에 다시 복귀하려 해도 할 길이 없는 무기능, 무능력의 상태로 빠져들어간 것을 말합니다.

은혜의 언약과 “구원”의 의미

이러한 까닭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지켜라. 그것을 어기지 않고 지키면 네가 생명을 얻을 것이다” 하는, 이 행위로 말미암은 구원의 언약을 사람이 지킬 수 없게 되고 그 언약은 파기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다시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이 다시 맺은 언약이 ‘은혜의 계약'(The Covenant of Grace)이라는 것입니다. “너는 할 수 없다. 죄의 오염과 죄책으로 네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죄책을 내가 네게서 가장 공의로운 방법으로써, 의에 일점도 저촉됨이 없이 면제해 주고, 네 죄의 오염으로 말미암은 그 할 수 없는 위치에서 건져내 주마. 즉 죄의 오염으로 쇠사슬에 매여서 종이 되어 있는 위치에서 내가 너를 건져내 준다” 하는 것입니다. “죄책을 면제할 뿐 아니라, 죄의 권세와 그 쇠사슬에 매여 가지고 노예 노릇을 하는, 네가 죄를 안 지려고 해도 안 질 수 없이 질질 끌려다니면서 짓는 이런 위치에서, 즉 네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해도 암매 가운데 눌려 있어서 멍청한 생각을 늘 하고 살 수밖에 없는 이런 가운데서 건져 빛을 보게 해 주마” 이것이 은혜의 계약입니다…

세대주의적 성경 해석을 경계함

…여러분은 그것을 명확하게 알고 혹여라도 항간에 돌아다니는 그릇된 사상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구약 시대에는 율법의 시대로서 구원받는 조건이 별달리 있고, 신약 시대에 와서는 은혜의 시대라 해서 구원받는 조건이 또 별달리 있다”고 하는 그릇된 생각이 많이 돌아다녔고, 물론 지금도 그것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도리는 아주 명백하게 “그런 것이 없다” 합니다.

김홍전, <예수님의 행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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