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신앙의 부재
옥한음 목사님의 현실 비판에서 값싼 복음에 대한 언급이 있다. 살아 생전 무엇을 하더라도 믿음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값싼 복음이 교회에서 설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이것은 값싼 복음 정도가 아니라 변질된 복음, 다른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고 본다. 왜? 우리가 성경을 통해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배운 참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큰 죄책이 각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노력을 해도, 윤리의 히말라야를 오른다 해도, 하늘에 있는 달과 같이 저 높은 하나님 나라의 생활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나날이 더 부채를 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깊은 절망에 빠져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분께서 스스로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하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 곧, 기쁜소식이다.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공효 때문이지, 내가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종교적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도 때문이다! 이 사실을 분별 못하고 마치 사람이 무엇을 믿으면 그 믿음이라는 것을 대가로 구원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이상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 그 어디서도 구원에 필요한 대가를 치루라는 것은 없다. 심지어 믿음이 그런 식으로 도입되지 않는다. 믿음이 구원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결과라는 유다서의 말씀이 엄연히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다서 1:3)
이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대개 요한복음 1:12을 지적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지만 이 말씀은 항상 바로 그 다음 절, 13절 말씀과 함께 읽어야 한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