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전형들
열두 사도라는 이름은 우리가 존중히 여기고 얼른 높이는 것이지만, 개별적으로 가만히 따지고 보면 아까 이야기한 것과 같이 우리가 그 이름을 몇 사람이나 기억하고 있는가 의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정도인데, 이사람들은 과연 그렇게 무의미하고 희미한, 즉 무명무색한 사람들인가? 그렇게 무명무색한 사람들을 주께서 데리고 무엇을 하시려고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는 이름이 없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참으로 기독교인의 한 전형적(典型的)인 예를 내놓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전형의 예라는 것은 뭐냐 하면,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해서 세상의 명예나 찬양이나 보상과 같은 것을 바라지 않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신실하게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고 그리고 자기에게 주신 바 임무를 그것이 작고 크고 간에 상관할 것 없이 충성스럽게 하려는 그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시시하면, 그것 시시하다고 집어 내던지고 안 하려고 합니다. 같은 세월을 보내면서, 같은 정력을 쓰면서 하는 일이 보람 있고, 해 놓으면 효과도 번듯하고 사람들도 괄목할 만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옳지, 뭐 시시하게 미미한 이것을 하랴 하는 것입니다. 신자라도 가령 예배당에 가서 예배당의 문 앞에 섰다가 안내하면서 새로 온 사람들을 인도해 준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신을 벗고 들어가는 데서 신장을 정리한다든지 하는 그런 것은 뭐 별로 중요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장로라도 되어 상좌에 떡 앉았다 일어나서 가끔 이야기도 한 마디씩 하고, 남들이 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집에 있든지 혹은 밖에 나가든지 남들이 다 “장로님, 장로님” 또 “집사님, 집사님” 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무엇이든 벼슬이 하나 붙기를 바라는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바른 신자의 정신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이 열두 제자 대부분이 무명무색한 사람이며 따라서 역사에 오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원체 대표자가 돼서, 역사에 나타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야고보 같은 사람은 예수님의 가장 측근에 있으면서 예수님이 늘 데리고 다닌 세 사람 중의 하나지만 뭐 별로 특별한 업적이 없습니다. 있다면 마지막에 다른 사도들보다 일찍 헤롯의 칼에 죽은 그것입니다(행12:2). 열두 사도 가운데 최초로 순교를 한 사람입니다. 요한은 물론 고통도 많이 받았고, 요한복음과 요한서신 또 계시록을 쓴 것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한 사람입니다. 물론 굉장한 일을 한 사람이고, 그래서 그 업적이 남아 우리가 지금 아는 것입니다
물론 나머지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일, 전도하는 일을 열심으로 하다가 죽었겠지만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야 후대의 역사에도 참으로 많지 않습니까? 어디 알 수 없는 데 가서 전도하다가 수한이 다해서 죽든지 순교를 하든지 그런 일이야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둔 사람들입니다.
— 김홍전, “예수님의 행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