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경건의 능력
마라톤 맨 님의 블로그에 일제시대 당시 조국 교회의 친일 행적을 나열한 글이 올라와 있다. 그것을 읽으며 과연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런 동일한 고난 가운데 쳐해져 있을 때 과연 신앙의 정절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일제의 만행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입에 담기도 무섭고 더러운 일들을 자행한 그것이었다. 총, 칼, 작두 등을 가지고 차마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없는 온갖 무자비한 짓을 저질렀다. 그런 공포와 폭력 앞에서 난 절대로 주님을 배반치 않고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할 사람이 누구랴.
나의 결론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주 기개가 높은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범인(凡人)들이야 어쩌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주의 은혜라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할 수 있으리라는 것 뿐이다.
주 예수님을 따르고 성신님의 거룩한 인도를 받아 나아가는 신령한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연관된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어느 교회에서 담임 목사님께서 소천하시고 후임 목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교회는 두 갈래로 찢어져 서로 비방하며 갈등을 빚게 되었다. 후임 목사를 선정하는 문제가 생기기 전 까지만 해도 서로 만나면 형님, 아우님 하며 서로 웃고 사랑한다고 말하던 교인들이었다. 그런데 몇 일 사이에 상대를 비방하고 편을 가르는 위치까지 떨어졌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 교회가 경건의 모양새는 번듯하였지만 참된 경건의 능력은 갖추지 못한 비참한 위치에 지금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아무런 시험과 유혹이 없을 때는 자신이 마치 성인 군자라도 된듯한 착각을 하기가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뜨거운 입김이 불어 참된 신앙을 가려내실 때, 뿌리 없는 신앙은 당장에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도덕이란 그런 것이다. 물론 사람들 중엔 훌륭한 도덕을 쌓아 올린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 조차도 하나님 나라의 덕을 선전하기에는 불완전한 것이다. 우리는 전부를 포기해야 하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神)으로 이루시겠다는 그 언약과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하겠다. 지금이야말로 혼란과 배교의 시대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