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산다는 것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0:38)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이란 믿음으로 사는 것임을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 옛 사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극복하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주의 은혜로 거하는 세계가 하나님 나라임을 천천히 배워가고 있습니다; 주께 요구함으로 거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주를 믿고 그분을 잠잠히 기다리는 것임을 이제서야 깨닫는 것 같습니다; 나의 깨우침이라든지 내 각성 등 주의 언약 외의 것을 조금치라도 의지하려는 것 없이, “나”라는 존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만이 나를 통해 나타나야겠다는 심정으로 거하는 곳이 거룩한 아드님의 나라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회개와 더불어 “이제는 달라지겠지”라며 자기가 조금 성장하길 바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요. 나라는 인간을 아무리 개조해도 나오는 것은 썩은 물이요, 나의 가장 최선의 순간에도 오직 성신을 거스를 뿐이라는 것을 정말이지 더욱 깊이 깨우치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달라질꺼야” 기대해 보아도 진정한 개선이란 없습니다. 개선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극진하신 은혜와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그분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이루신 일이 어찌나 기이하고 망극한지요. 그리스도의 구속의 대업으로 말미암아 그의 백성들에게 이미 영생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이미 새 것이요, 항상 새롭습니다. “이제는 달라질꺼야”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이미 새 것이었고 하나님 앞에서는 그 상태만이 살아 있는 순간입니다.
믿지 아니할 때는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의문하겠지만, 그것은 문 앞에 서서 들어가지 않고 있는 사람의 마음 상태와 같을 뿐입니다. 그것이 신비입니다. 믿음이 조건은 아닌데, 믿음 없이는 거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계신 우리 하나님과 그의 어린양께 있습니다; 세세토록 영광과 나라와 능력과 찬송이 거룩하신 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며 그 분의 영광을 더욱 갈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