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요점은 권선징악이 아님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보응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선(善)이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가치를 매기실 만한 것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최선의 순간에도 거기엔 결핍이 있으며 부패가 있다. 윗 어른께 선물을 드릴 때에도 조그만 흠이 있으면 결례로 생각하거든, 하물며 절대의 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거룩하신 분께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 여하에 응당하게 다스리신다는 것과, 우리의 어떤 행동들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뿐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 우리 안에서 발휘되는 것은 오로지 성령님의 역사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무지 조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것이 없고 오직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구약 열왕들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선악 여부에 따라 보응하시는 것을 보고 우리도 착하게 열심으로 주를 섬기면 그 대가(代價)로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보응해 주신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일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항상 ‘나’를 중심으로 생각할 때 범하기 쉬운 오류이다; 성경은 일차적으로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기록들은 하나님 나라의 법도와 경륜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마치 바벨론에서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것 처럼 (에스라 1:5),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은혜로서 보응하시는 것은 그 사람의 선을 그 사람의 공로로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마땅한 귀결 — 곧 하나님 나라를 증시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주신다는 그 당연한 위치로 보내주시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내게 불행 또는 행복을 주신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곤란하다.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기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주시기도 하신다. 이스라엘 열왕의 역사가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성령님의 주장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를 계속 증시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러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특권을 거두어가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행여라도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하나님께서 복된 인생을 살게 해 주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아니된다; 처음부터 주의 은혜 외에는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인생이다; 그저 주의 은혜와 자비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일하고도 분명한 위로요 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