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의미
요새 교회에서는 Sinclair B. Ferguson 교수가 쓴 <The Sermon on the Mount>라는 책과 더불어 예수님의 산상보훈을 공부하고 있다.
어떤 성경 본문을 공부하던지 그 본문을 담고 있는 전체 배경과 (지금의 경우 ‘마태복음’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그 본문이 등장하고 있는 문맥을 살피게 된다.
마태복음의 중요한 주제가 “The Kingdom of God” (우리 말로는 ‘하나님의 나라‘ 보다는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말 외에도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마태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말은 (총 네 번 등장하는데)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When Jesus had finished saying these things) 이다. 이 어구를 기점으로 마태복음을 다섯 절로 나눌 때 역시 각 절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 바로 구약 성경에 예언된 이상 국가이다 (예를 들어 이사야 52:7, 미가 4:7).
마태복음은 결국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고, 그런 면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관계를 살피는 데에는 마태복음에 두 번 등장하는 “이 때부터” (From that time on) 이라는 구절을 기점으로 절을 나누는 것이 유익하다: 첫 절 (마 1:1–4:16)에서는 예수님의 신분을, 특히 구약 성경을 기초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결론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라는 것이다. 둘째 절 (마 4:17–16:20)에서는 예수님의 왕권의 행사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그분의 나라로 들어오라는 명령이 있다. 셋째 절 (마 16:21–28:20)에서는 고난 받는 왕의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죽음을 이기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마 28:18) 그분은 그의 사도들을 세상에 보내어 온 나라와 족속 가운데서 그의 백성들을 모으는 사명을 부여하셨다.
이랬을 때, 예수님께서 왜 “천국이 가까이 왔다” (마 4:17)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다 — 왕이 오셨기 때문이다! 왕의 통치가 있는 그곳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임한 것이다 (마 12:28). 물론 겨자씨의 비유(마 13:31)에서 설명하시듯이 아직 완성된 모습을 갖추진 않았지만, 이미 여기 시작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또한 기도하라 가르치셨다 (마 6:10).
이제 우리는 산상보훈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도무지 이루지 못할 이상적인 얘기를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왕으로 계신 그 나라 안에서의 삶(life style)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를 떠나 산상보훈에서 어떤 교훈을 얻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를 않는다 — 예를 들어 그 말씀 가운데는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다 (마 5:11). 또, 구원이라는 것을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움 받은 사건으로 볼 때 (골 1:13), 산상보훈의 말씀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 가장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린 때때로 구습에 젖은 모습을 뒤집어 쓰고 나올 때가 있다. 어떻게 하면 항상 그 분 나라의 백성다운 자태 가운데 거할 것이냐라는 문제는 산상보훈에서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배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왕(王) 또는 주(主)로서 모시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는 것을 전혀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예수님을 구원자로서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시작되고, 그 생활의 결과로서 그 분을 주(主)로 모시게 되는 것이 아니다 — 예수님 앞의 전적인 습복 아래서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생활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또 우리가 분명히 배우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왕으로 또는 주(主)로 “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인정하던 않던 그분은 왕이시다; 그 사실 앞에 무릎을 꿇고 부종하던지 아니면 배척하던지 둘 중 하나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구원자이시며 주(主)되심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求主)로서 믿는 그 사람은 예수님과 생명으로 연합 되어 있고, 그런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생활을 할 때 곧 하나님 나라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들어가는 나라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그리스도인의 심령의 통치이다; 하나님 나라의 법이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 심령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에 의한 새 사람의 활동이 나타날 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 가운데 실증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의 첨예한 대립이 일어나는 접점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인 안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생활 방식과 이 세상 사람의 생활 방식은 너무 다르다 — 얼마나 다르냐면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왕을 배척하고 결국 죽이기까지 싫어하였다. 그 왕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갈등이 있을 것은 자명하다. 산상보훈은 그 생활의 표준이다. 왕께서는 우리를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하셨다 (마 5:13-16). 참으로 특권있는 위치요 힘이 솟아나게 하는 부르심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의 반응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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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슬초
승헌님, 메모로그로 스크랩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