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평범함
신령한 사람의 상태란 열정으로 가득차서 의심, 고민, 유혹도 없이 어떤 목표를 향해 줄기차게 달려 나가는 상태라고 상상하며 알게 모르게 그러한 것을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반 년 가까이 예수님의 행적을 공부하면서, 또 요새 교회에서 듣는 욥기 강설과, 그리고 나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이 겪는 번민들을 보면서, 믿음의 행보라는 것은 요란법석한 것이 아니며 무슨 위대한 꿈을 꾸거나 종교 귀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때론 우시고 또 고민하시고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시며 땀 흘려 이 땅 위를 걸으셨던 것 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것임을 이제사 조금 느끼는 것 같습니다.
기도를 해도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해야 제대로 한 것 같고, 찬송을 해도 감격에 겨워 눈물이 눈 앞을 가려야 제대로 부른 것 같고, 예배를 해도 몸이 찌릿찌릿 해야 은혜 받은 것 같은 그런 생각이 은연 중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러나, 하나님의 대권(大權)을 접하는 순간이 오는 것입니다. 그때는 깨닫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라”는 사실을 (전도서 5:2).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막 4:26,27)는 주님의 말씀은 참입니다. 하루 아침에 무슨 열매 맺겠다고 난리부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기는 커녕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이 유일하고도 가장 감사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는 ‘나’라는 것이 나오지 않고 그리스도의 성신이 주장하시길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양 무리 속에 나도 하나가 되어 동거동락한다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도 갈등과 유혹, 걱정, 결핍이 나를 에워싸지만, 말씀과 성신으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나라의 현실을 누리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입니다. 여러 믿음의 사람들이 고백한 이 사실을 저는 이제야 조금 체득하는 것 같습니다.
“평상적이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항다반의 생활 가운데 고요히 처해 있는 사람이 만용을 휘두르면서 괴상한 일을 하겠다고 떠드는 사람보다 얼마나 위대한 신자인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이 믿음이 가지고 있는 소위 평범성입니다. 믿음은 평범한 것입니다. 믿음은 출렁거리는 바다의 윗 물결이 아니고 아래로 흘러가는 저류(底流)입니다. 늘 흐느고 있지만 껍데기에서 야단 내고 요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계를 알아서 스스로 일정한 방향을 향해 늘 흐르고 있지 방향을 일탈해서 딴 데로 넘쳐 내려가 버리지 않습니다.”
— 김홍전,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