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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한 신앙은 1세기 동안 발전되었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에서 시작되었고, 그 대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지요1; 즉 우리 각 사람의 죄에 대한 형벌을 맛보시고 죽으셨으나 그 의로움으로 부활하사 천상천하의 대권을 쥐고 지금 이 땅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고백, 또는 기독관(그리스도란 어떤 분인가?)은 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학자들 중엔 이러한 성경의 기독관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약 몇 십년 동안 서서히 발전되어 정립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약 50일이 지난 시점에서 베드로가 한 설교(사도행전 2장)를 읽어보면 아주 처음 부터 그 사상 가운데 예수님의 속죄와 메시아적 왕권이 우뚝 서있습니다. 게다가 신약 성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보더라도 처음에 쓴 것이나 나중에 쓴 것에서나 기독론에서 전혀 차이가 없고, 분명하지 못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뚜렷해졌다는 식의 발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러한 일관성 때문에 그런 서신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담은 글이라 하여 성경을 이루게 된 것이기도 하지요.

그런데—사람의 죄를 대속한다는 사상은 수 천년 된 모세적 제도에서도 벌써 나타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 일을 장차 메시아가 담당할 것이라는 예언도 구약 성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이스라엘 민중들에겐 정치적인 메시아의 모습이 가장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바위 처럼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던 그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부활한다는 경륜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등이라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죽음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부터 교회의 고백으로 우뚝 서 나왔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것이며, 자연스러운 인간의 사유 작용의 결과라고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접촉된 실증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1.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예식은 두 가지 — 세례와 성찬이 있는데, 이것들이 분명하게 상징하는 것이 예수님의 속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