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聖化)는 의지가 아닌 믿음의 열매
성화와 관련한 앞선 글에서, 성화는 도덕적으로 고결해지려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 사람의 능력으로 죄에서 해방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효로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깨닫고,
- 그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바꾸어 가시려는 하나님의 예정이 있었기 때문임을 앎으로써,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대하여 ‘뜻하신 것을 이루시옵소서’ 아뢰는 믿음의 순종이 성화의 길이라고 적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나는 돌부처 처럼 가만히 있어도 되겠네’ 혹 질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맨 처음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입은 사람에게 새 생명이 활동하도록 하시는 것이니, 그 사람은 결코 꼼짝 않고 있을 수 없다. ‘생명’은 그 말의 정의상 정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편 115편 中
위의 말씀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못한 자들의 모습일찐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은 자들의 상태는 그 반대임을 말해서 무엇하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나는 돌부터 처럼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을 붙이셨으니 나는 타오르지 않아도 되겠네’라고 말하는 식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불이 심령에 옮겨붙은 자들은 타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엄마가 가는 곳에 따라가지 않으려는 아기 없듯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영광의 길로 이끌고 가시는데 나는 가만히 있겠다고 생각할 主의 자식 없다. (참고로 지난 주 강설은 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오히려 우리가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것은 우리를 영광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택정에 대한 생각이 무뎌질 때이다; 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희미해질 때이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성화 역시 믿음의 열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