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시대의 앵무새가 되지 않으려면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서는 세대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미 시작된 한국 사회의 변화가 향후 한국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다. 교회가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상당한 경우 교회는 사회의 앵무새 노릇을 해왔다. 엘룰(Ellul)의 말을 빌린다:
과거에 교회가 빈곤층을 무시했다면, 지금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이민 노동자들과 가까이 한다. 과거에 독재 정권을 뒷받침했다면, 지금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과거에 절대적 진리와 교리를 주장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자기가 믿고 싶은대로 믿도록 둔다. 과거에 엄격하고 잔인한 성(性) 도덕을 가르쳤다면, 지금은 낙태와 동성연애를 옹호한다. […] 이것은 진보가 아니다. 교회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동시대 사회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수용했을 뿐이다. 빈곤층을 돕는다고 하지만 100년 전, 200년 전 보다 진리의 각성이 더해진 것이 아니다. 배교적 성격은 여전하다. 사회의 주류적 경향에 그대로 부응하는 것에 성육신(聖肉身) 된 진리란 없다. 여전히 전복된 기독교를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만함까지 더했으며 (현대에 와서 비로서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게 됐다는 F. Belo의 순진한 주장 처럼) 앞선 세대의 기독교인들을 비난하는 위선도 지니고 있다. — Jacques Ellul, “Subversion of Christianity”
이런 앵무새 노릇을 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변치 않는 진리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분의 의사 또한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것이 기록된 시대의 신앙고백이며, 우리는 우리 시대의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