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되어 인용되는 인기 구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마태복음 7장 21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상당히 많은 경우 “믿음 못지 않게 행위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그 의미가 왜곡 되어 인용 된다.
하지만, 이 말씀은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27절에 걸쳐 기록된 산상보훈의 결미를 여시는 말씀으로서, 그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믿음은 있었으나 행위가 없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실만한 그 무엇을 행했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열된다. 달리 표현하자면, 마지막 심판의 그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의지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읽는 우리는 과연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할 이유로 무엇을 제시할 것인가? 우리도 이 말씀 가운데 나타난 사람들 처럼 우리가 기독교를 열심히 믿었다는 등 우리가 했다고 할 그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에 나타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흑암의 세력을 쫓아내고, 또 훌륭하다고 할만한 일들을 많이 행했다고 한다. 주님 앞에서 자신이 행한 것을 직고하는 이 날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변론을 들으신 후 재판장께서는 최종 결론으로 그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선고하셨다. (놀라울 것이 없는 것은 이 세상 그 누구라도 자기가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과 그리스도께 범죄한 것을 평명하게 놓고 본다면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안타깝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말씀이다.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들이 의지하고 있었던 그 행위들이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지 못했다. 의지하지 말았어야 할 것들을 의지했던 것이다.
주께서 참으로 가르치시려고 한 중요한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채 단순히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마태복음 7장 21절을 인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혹여라도 그런 왜곡된 해석을 듣고, 그 날에 ‘주여, 제가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착한 일에 힘 썼는지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아뢰는 사람이 생긴다면 어쩔 것인가?
5 Comments
오직예수
할렐루야. 좋은 나눔 감사드립니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칼뱅의 종교개혁과 예정설이 깊이 왜곡되고 있다는 거죠. 구원받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어떤 것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좁고 들어가는 많지 않죠 (마 7:13~14). 우리가 판단 할 수 없지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진짜로 믿는가를 성경적인 기준으로 확인할때 열매로 그들은 아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에서 얘기하신 마 7:15~27 말씀이 적용된다고 생각됩니다. 행함이 절때 구원을 가져 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한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행함이 동반됩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 달란트비유, 재림의 언급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부인줄 알았지만 마지막때 준비하지 못해서 거절당한 자들, 주신 달란트를 사용하지 못해서 거절 당한자들, 또 양과 염소의 구분으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지 않은 자들 도 거절 당합니다.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여기서 거절은 지옥, 영벌 (마 25:46)행을 뜻하죠. 모두 깨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합시다. 또 구제하고 선교에 힘씁시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용식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진짜 믿는다면 순종으로 인한 행위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하여 넘어질 수 있어도 계속 죄에 허우적거릴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피흘려 내 죄사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여 다시 일어서야 하고, 믿음에 근거한 행위로 이어지는 선한 싸움을 하나님 나라 가기까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착한 행실, 즉, 죄로부터의 완전한 단절로 인한 결과인 좋은 열매로 그 사람의 믿음이 평가되는 것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누가복음 3:9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행위를 이야기한다고 왜곡됐다고 하시는 것은…….
Hun
자신의 행위가 (아무리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 하여도)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경고입니다.
미원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는 필연적으로 ‘행동함(행위)’가 따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포커스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고 생각 합니다. 행위는 믿음과 한 세트 인것이지 따로 때어 낼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님의 글 내용중 ‘아무리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 하여도 자신의 행위가~’는 좀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믿음에 근거한 행위라면 당연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는 의미인데, 왜 경고를 하나요?
저 구절은 ‘믿음의 순종 없이 경건의 모양만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경고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겉으론 예수를 믿는체 하지만 실상 속에는 예수가 없는.. 당연히 그런 이들은 믿음에 근거한 행위가 아니지요.)
Hun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정도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선지자 노릇할 정도의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꼭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