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서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20–121 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20–121 문답은 주기도문 서두에 관한 문답이다. (아래는 독립개신교회 번역본이다.)
120문: 그리스도께서는 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라 명하셨습니까?
답: 그리스도께서는 기도의 첫머리에서부터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심과 신뢰를 불러일으키기를 원하셨는데,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기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아버지가 되셨으며,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부모가 땅의 좋은 것들을 거절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21문: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이 왜 덧붙여졌습니까?
답: 하나님의 천상(天上)의 위엄을 땅의 것으로 생각지 않고,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래는 이에 대한 김헌수 목사님의 강설 중 일부분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4, 76–78 쪽). 굵은 글씨 강조는 졸인이 한 것이다.
첫째,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서 이것이 교회의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 기도하더라도 기도할 때에는 항상 교회아(敎會我)의 의식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라고 할 때에는 나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하신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바리새인처럼, “나는 저 사람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바리새인이 세리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드린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눅 18:9-14). 오늘날에도 “나는 저 사람과 달리 무엇 무엇을 얻었으니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도한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듣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은 바리새인처럼 기도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의 부족이 곧 나의 부족이고 저 사람의 부족이 곧 교회의 부족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둘째, “우리 아버지”이지만 동시에 그분은 “하늘에 계신” 분입니다. ‘아빠’라고 할 때에는 굉장히 친한 것을 나타내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분’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에게 친근히 오신 분이지만 피조물인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고 우리는 땅에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신 분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와 친숙하게 된 것을 알려 주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기도의 첫 마디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도 이렇게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사람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이러한 분으로 알 수 없었고, 바르게 부를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들도 그러한 말로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들의 신은 ‘대자 대비(大慈大悲)한 신’이든지 아니면 ‘무서운 신’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에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은 신관을 그들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하늘에 계신 것과 또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 것의 신비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짜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도 기도를 가르칠 때에 이렇게 가르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될 새로운 세계를 충분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부활로써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계시하셨고, 기도도 그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긴밀해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르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 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과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뢰어서 받고, 그 결과로 주님을 더 사랑하고 찬송하는 데로 들어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을 기념하는 때이다. 다시금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