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잉태되시고 장사되시기까지 받으신 고난
우리로서는 영혼과 육신에 관한 문제를 다 알 수 없고, 따라서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말의 의미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그냥 빼버리지 않고 좀 더 성경적인 표현에 가깝게 생각하면 오히려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영혼으로 지옥의 고통을 당하시고 육신으로 가장 낮은 데까지 내려가신 것은,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함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서 지옥의 고통을 다 받으셨습니다.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실 때부터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당하실 때까지 지옥의 고통을 다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심으로써 죄악 가운데 잉태되고 출생한 우리의 죄를 주님의 순결함과 거룩함으로 가려 주셨고, 또한 죄 때문에 무덤에 묻힌 우리를 거기에서 구원하여 주시려고 친히 무덤에까지 내려가셨던 것입니다. 복지 국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잉태에서 무덤까지’를 말씀하십니다. 잉태될 때부터 무덤에 묻힐 때까지 우리의 죄를 덮으시면서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잉태에서 무덤까지’ 이 세상에 사셨던 모든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셨는데, 바로 우리를 위하여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위로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서 지옥의 고통을 받으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으므로 우리가 거기에서 벗어났음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어렵고 두려운 일도 있고 근심되는 일도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서 지옥의 고난을 받으신 것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큰 고통과 중대한 시험을 당할 때에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옥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확신하고
거기에서 풍성한 위로를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1』 395-3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