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때문에 아이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72, 73, 74 문)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 곧 교회의 일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성례전은 유월절 만찬과 할례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그 언약을 새롭게 하시면서 그에 걸맞게 유월절 만찬과 할례라는 성례전 역시 성찬과 세례로 새롭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찬과 세례는 유월절 만찬과 할례가 가지고 있던 성격과 내용을 각각 계승함과 동시에 더 풍성하게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할례인 세례를 (골로새서 2:11-12) 교회의 유아들에게 주는 것은 교회의 의무이며, 그 근거는 부모의 신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와 너희 자녀의 하나님이 되리라”하신 하나님의 언약과 (사도행전 2:39) 그 보증이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있다. 간혹 구원 받은 사람만 세례 혹은 성찬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유사이래 성례전을 거듭남의 증거로 사용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세례에 관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제 72–74 문에서 다루고 있다 (아래는 독립개신교회 번역본이다):
72문: 세례의 물로 씻음이 곧 죄 씻음 자체입니까?
답: 아닙니다 [1].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신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2].
73문: 그러면 왜 성신께서는 세례를 “중생의 씻음”과 “죄를 씻음”이라 하셨습니까?
답: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의 더러운 것이 물로 씻겨지듯이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피와 성신으로 없어짐을 우리에게 가르치려 하셨습니다 [3]. 더 나아가서 우리의 죄가 영적으로 씻겨지는 것이 우리의 몸이 물로 씻겨지는 것처럼 매우 실제적임을 이러한 신적(神的) 약속과 표로써 우리에게 확신시키려 하셨습니다 [4].
74문: 유아들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답: 그렇습니다. 그것은 유아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언약과 교회에 속하였고 [5], 또한 어른들 못지않게 유아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속죄와 믿음을 일으키시는 성신이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6]. 그러므로 유아들도 언약의 표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합되고 불신자의 자녀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7]. 이런 일이 구약에서는 할례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나 [8] 신약에서는 그 대신 세례가 제정되었습니다 [9].
[1] 마 3:11; 엡 5:26; 벧전 3:21 [2] 고전 6:11; 요일 1:7 [3] 고전 6:11; 요일 3:5; 5:6-8; 계 1:5; 7:14 [4] 막 16:16; 행 2:38; 갈 3:27 [5] 창 17:7; 마 19:14 [6] 시 22:10; 사 44:1-3; 행 2:39; 16:31 [7] 행 10:47; 고전 7:14 [8] 창 17:10,14 [9] 골 2:11-12
여기서도 교회의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교회의 의무임을 가르치고 있다. 아래는 이에 대한 김헌수 목사님의 강설 중 일부분이다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
우리의 자녀가 언약의 표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합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불신자의 자녀와 구별’되게 양육하여야 합니다. 교회에 연합되었다는 말은 이제 세상과는 분리되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부모와 함께 자녀도 교회에 속하기 때문에 불신자의 자녀와 구별되게 양육하여야 합니다. 교회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혼인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 불신자의 자녀들이 추구하는 것을 똑같이 추구하고 사회에 나가서 성공하기만을 바란다면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언약이 그 아이에게 선포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아이를 삼위 하나님께 드리면서 교회의 자녀로 자라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부모는 이제 그 자녀가 자기의 입으로 하나님의 은혜 언약을 공적(公的)으로 고백하고 교회의 성찬 회원이 되도록 마음을 다하여야 합니다. 유아세례를 받았으면 이제는 성찬의 상(床)에 나아가도록 자녀를 양육하여야 합니다. 자녀가 커서 자기의 힘으로 사회생활도 하고 직장도 찾도록 교육을 시키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자기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 안에서 자기의 일을 찾도록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것은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 기도하고 아이와 함께 기도하고 아이를 위하여서 기도하면서 힘을 써야 할 내용입니다. 부모가 이러한 의무를 자각하고 부지런히 가르치고 생활에서 모범을 보이고 자녀를 위하여서 기도하고 자녀와 함께 기도한다면, 주님께서 언약 안에서 주시는 복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깨달음도 없고 노력하는 것도 없다면, 유아세례라는 것은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극히 크신 사랑 가운데서 내려 주신 것을 매우 그릇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의 수단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2, 318–319 쪽 (굵은 글씨는 졸인의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