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 (7)
- 율법 =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할 것
- 복음 =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
통상 구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양상을 (더 세분하기도 하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칭의, 성화, 영화를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복음이 구원의 기쁜 소식이라고 할 때는 단지 우리의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와 영화 까지 약속하는 것이며, 그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효에 있음을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생각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공효가 우리 안에 역사하는 것은 믿음이라는 수단 혹은 통로를 통해서라는 것을 지난 회차에서 상고하였다.
믿음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같은 질의 것이 아님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배운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구원의 신앙은 하나님의 성신께서 신자에게 주시는 선물로서 사람이 스스로 일궈낼 수 없다 (요 1:13, 겔 36:26, 유 3, 고전 4:7). 이를 ‘선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지난 회차에서도 봤듯이, 그 선물을 받기 위해 사람이 미리 준비해야 할 것 없이 순전히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믿음 중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믿음, 헛된 믿음이 있다 (고전 15:2).
과연 예수님의 말씀에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고 부르지만 예수님과 생명의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마 7:21-23).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할 이유로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한다. 그들의 이 말은 거짓이 아니다 (롬 14:12).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고 하니 교회에서 남을 가르칠만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니 아무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약 1:6-7). 권능을 행하였다고 하니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만한 일을 행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바른 교리를 다 인정하는 ‘역사 신앙'(historical faith), 기적을 믿고 경험하거나 발휘하는 ‘기적 신앙'(miraculous faith), 혹은 현세적인 능력을 추구하거나 발휘하는 ‘현세 신앙'(temporal faith) 등은 구원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류의 믿음은, 돌밭에 떨어진 씨를 갖고 하신 예수님의 비유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즉시 기쁨으로 받을 수도 있다; 얼마든지 열정이 넘쳐날 수 있고 믿기 까지 할 수 있다 (막 4:16). 하지만 그런 것도 구원의 신앙(saving faith)을 지녔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간혹 특정인을 언급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능력있는 사람이 혹은 나에게 은혜를 끼친 사람이 거짓 교사일수가 있겠느냐’고 묻는 것을 접할 때가 있는데,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참능력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이 말씀 가운데 나타난 사람들에게서 무엇보다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할 이유로서 제시한 것들이 전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위해 행하신 것(복음)이 아닌,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했다고 하는 것들(율법)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마지막의 순간에도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하시기 위해 이루신 복된 사실을 의지하지 못한 그들의 신앙은 구원의 신앙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신다 (마 7:23).
그리스도 외에 그 무엇도 — 명상, 기도, 찬송, 회개, 예배, 십일조, 방언, 자기 희생, 교황, 혹은 성모 마리아도 —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데려가지 못한다. 오직 그리스도는 흠없는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셨고, 믿음으로 그와 연합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우리에게 ‘예’가 된다. 그것을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곧바로 골고다로 가시지 않고, 뱃속의 태아로 오시어 성인으로 자라가시는 과정을 다 겪으시면서 율법의 요구를 조금도 부족 없이 이루는 삶을 사셨다; 율법을 다 지킨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우리에게 돌리시기 위해서이다 (마 3:14-15, 고후 5:21, 히 10:7-9, 갈 4:4-5, 행 26:18).
참 믿음은 자신에게 있는 그 어떤 것도, 믿음 조차도 의지할 것으로 여기지 않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효를 의지하는 ‘빈 손’이다. 그것은 우리의 칭의-성화-영화를 아우르는 구원의 모든 양상에 대해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에게 있어서 복음은 어제의 기쁜 소식일 뿐 아니라 오늘의 문제에 대해 참 대답을 제시하는 항시 기쁜 소식,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복음 사실로 인해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움을 받았을 뿐 아니라, 율법의 요구를 따르는 그 나라의 생활을 위한 오늘의 능력 또한 복음 사실에서 얻는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
율법과 복음 기획물
- 율법과 복음 (1)율법과 복음의 범주를 설명한다.
- 율법과 복음 (2)율법의 범주 아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오직 복음의 사실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세운다.
- 율법과 복음 (3)복음은 하나님께서 옛적부터 맹세하신 구원의 언약이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기쁜 소식이다.
- 율법과 복음 (4)복음 약속, 곧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은 우리 조상 아담이 죄를 범하여 죽게 된 직후 하나님께서 즉시 베푸신 언약으로서, 아담 이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유일한 구원의 언약이다.
- 율법과 복음 (5)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은 우리의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 까지 약속하고 있다. 그 영원한 약속이 반드시 이뤄지도록 성부께서는 맹세를 하셨고, 성자께서는 자기 피를 가지고 보증이 되시며, 성신께서는 우리를 보전하신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에게서 마친다.
- 율법과 복음 (6)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의 언약을 지키시는데 사람 쪽에서 근거를 찾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근거를 찾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언하신 은혜의 언약을 사람이 ‘지키는’ 것은 그 약속을 ‘믿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 율법과 복음 (7)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그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그 믿음 자체가 사람이 일궈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 중에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헛된 믿음이 있다.
- 율법과 복음 (8)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맹세하신 은혜의 언약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약속이 영원한 약속이 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는 골고다에서의 단 번의 제사로 영원히 당신의 백성들을 온전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는 하나님과 멀어질 것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그 능하신 팔로 행하신 구원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따라간다. ...
- 율법과 복음 (9)우리 시조 할아버지 아담이 범죄한 직후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복음 곧 은혜로운 구원의 언약을 베푸셨다. 아담 이래로 믿음으로 그 언약을 지킨 무리들이 곧 하나뿐인 보편적 교회(catholic church)이다. 그 보편적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단번에 받은 믿음(유 3)의 내용 앞에 우리의 신앙을 비춰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이번 편에서는 그동안 ‘율법과 복음’이라는 제목 아래 상고한 것들을 역사적인 신앙고백과 비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