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트 신조 395주년
예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준다”(마 16:19) 하셨을 때 (그 의미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할 것 없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교회에 권위를 주셨다는 사실이다. 교회로 하여금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이다’라고 공적(公的)인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권위를 주셨다는 사실이다.
도르트 신조(Canons of Dort)는 그러한 역사적인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로 특히 개혁된 교회들 가운데서 존중 된다. 도르트 신조의 내용은 종종 ‘칼빈주의 5대 강령'(Five Points of Calvinism)이라는 말로 소개 되곤 하는데, 사실 이것은 부적절하고 부실한 표현이다. 이제 잠시 보겠지만, 도르트 신조는 네덜란드 개신교회에서 있었던 다섯 가지 신앙적 쟁점을 다룬 도르트 총회(Synod of Dort)의 결론이다.
도르트 총회가 열리게 된 계기는 네덜란드의 아르미니우스(Arminius) 학파 세력이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반박과 의문을 던지는 다섯 가지 조항(Five articles of Remonstrance)을 공식적으로 작성하여 정부 기관에 제출한 것이다 (1610년). 당시 네덜란드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칼빈주의자들과 논쟁이 일었고 그것은 점점 심각해졌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국 총회가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정부가 막았다. 그러다가 쿠데타를 통해 정부를 장악한 모리츠(Maurits) 장군에 의해 전국 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르미니우스 학파의 주장이 지닌 성격, 그것이 오고 오는 교회에 미칠 영향,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답이 지닌 중차대성을 생각할 때 칼빈주의자들은 총회에 네덜란드 각 지역 교회의 대표들만 모이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국제적인 총회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유럽 전역에서 대표들을 초대하였다. 그렇게 하여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독일, 스위스, 프랑스, 스코틀랜드 등 여러 나라의 개신교회 대표들이 도르트(Dordrecht)에 모였다. 1618년 11월에 첫 회의가 열리고 아르미니우스 학파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입장을 발표하도록 했다. 1619년 5월까지 이어진 총회 과정에서 총회는 각국에서 모인 대표들을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그리고 최종 문서 곧 도르트 신조가 작성 되고 만장 일치로 체택 되어 1619년 5월 5일에 발표 되었다. 이런 여건이 조성된 것은 도르트 신조가 지니는 역사적이고 교회적인 의미를 생각하는데 참고가 된다.
그렇다면 아르미니우스 학파의 다섯 가지 반박 조항이란 무엇이었는가? (그들이 당시 교회의 가르침과 의견을 달리 하는 부분을 굵은 글씨로 표시했다.)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예정하셨는데, 예수를 믿고 그 은혜를 힘입어 끝까지 순종하고 견디는 자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
- 그리스도 예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사,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속죄와 구속을 얻어내셨지만,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그 구속의 은혜를 누릴 수 없다.
- 사람이 거듭나기 전에는 참된 선을 생각하거나 실행할 의지력이 부족하다.
-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구원하시고자 거듭나게 하는 은혜를 그에게 베푸시더라도 그 은혜를 사람이 거부함으로 거듭나지 않을 수 있다.
-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자는 성신께서 주시는 영생을 통해 이 세상과 죄에 대해 싸워 승리를 거둘 수 있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그러한 상태에 거하기를 원하고 순종할 때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 있다가도 자신의 부주의와 게으름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부터 완전히 끊어지는 상태로 떨어질 수도 있다. (원래의 반박문에는 그런 상태로 떨어질 수 있지도 않을까 의문을 표시했지만, 나중에는 그런 상태로 떨어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의견을 강화했다.)
위와 같은 주장 위에 서 있는 것이 소위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이다. 보시다시피 알미니안주의는 로마 가톨릭의 교리와 유사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알미니안주의는 오늘날의 폭넓은 개신교계 내에서 큰세력으로 존재한다. 졸인이 평소 오늘날의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여기 있다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개신교단들도 있지만 어쨌든 숫자만 놓고 보면 적은 무리다).
이상과 같은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도르트 총회에서 내린 결론이 도르트 신조이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이라는 별명 아래 TULIP이라는 약자와 더불어 소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 보았듯이 도르트 신조는 칼빈주의의 요점이 아니라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이며, 칼빈주의자들의 대답이라기 보다는 종교개혁을 통해 정립된 개신교회 주류의 신앙과 신학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도르트 신조의 내용을 보면 TULIP이라는 순서를 따르지도 않는다. 그럼 여기서는 도르트 신조 원래의 순서를 따라 도르트 총회가 알미니우스 학파의 다섯 가지 반박에 대해 어떻게 대답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원문을 보면 상당한 내용이 매우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총회가 답변서를 작성하면서 앞으로 오고 오는 교회에서 신자들이 읽고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알미니안주의자들과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축약해서 보기로 한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다섯 가지 반박에 대한 개혁교회의 답변 (신앙고백)”: (원문을 보면 3 조항과 4 조항이 묶여 있는데, 그 이유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의 3 조항이 그 자체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4 조항과 더불어서 보면 그 오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 구원의 예정이라는 것은 앞날을 내다보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믿음, 순종, 혹은 그 어떤 것이라도 미리 내다보시고 그것을 구원하시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삼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근거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공효 때문이며, 그러므로 구원의 예정이라는 것은 사람과는 상관 없이 순전히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누구를 그리스도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셨는가이고, 또 그렇게 택하신 자들에게 참된 믿음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마침내 영광에 이르도록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온 세상을 구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녔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약속이다. 그 복음의 약속을 믿지 않아 멸망에 이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그 사람을 멸망에서 건져내기에 역부족이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그 사람의 악함 때문이다. 하지만 복음을 진실로 믿어 구원을 얻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해서이며, 그러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사 실패 없이 구원하시기 위해 만세전에 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주시고 또 그렇게 그리스도에게 주신 자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효력이 있도록 만세전에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실제적 속죄, actual atonement)
- 우리 시조 할아버지가 자기 자유 의지로 하나님께 거역하고 타락하게 된 결과, 인류는 암매에 빠지고 지성, 감성, 의지를 포함한 그 모든 활동 기능에 결핍과 악에 내재하게 되었다. 죄인의 선택하는 능력은 죄로 오염되었으며, 지성과 감성만 새롭게 해주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총체적 타락, total depravity)
-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을 거듭나게 하시는 것은 사람의 지성, 감성, 의지를 포함한 모든 기능의 진정하고도 총체적인 변개로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심을 받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 조금도 의지하지 않는 완전히 초자연적인 사건이며, 믿거나 혹 믿지 않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정도가 아니라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정을 주시고, 믿음을 지니게 하시는 것이다. 강제가 아닌 자원하는 심령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활동이 나타나게 하시는 것이다. (효력있는 은혜, effectual grace)
-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죄와 사욕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자가 죄악 가운데 방황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듭나게하신 자들에게서 성신을 거두지 않으시고 죄악에 무한정 빠져들어가지 않도록 막으시며, 회개에 이르도록 하시고, 영원한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하신다. 이러한 보전은 신자의 신실함이라던지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은 실패하지 않으며, 그분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고, 그 부르심에 후회하심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속죄와 중보는 효력을 잃지 않고, 성신의 인치심이 무효화 되거나 지워지지 않는 만큼, 신자는 하나님의 이러한 보전을 확신하고 의지할 수 있다. (성도의 보전, preservation of the saints)
도르트 신조는 개혁교회의 국제적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신앙고백서로서는 유일한 것이다. 단순한 신앙고백서가 아니라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도록 작성된 문서이다.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읽어봐야 할 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