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너희가 권능을 받은 다음에 할 일은 내 증인 노릇 하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지낸 것뿐 아니라 결국 수난을 당하고 영광을 얻고 그리고 너희와 이야기하고 승천한 데까지의 일과 너희들에게 부탁하는 일, 이런 것들을 너희는 가서 증인 노릇 하면서 증언해라.’ 증인이 되는데 두 가지 방면에서 증인이 됩니다. 첫째는 증언이라는 방면에서 증인 노릇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증언을 하려면 증언할 내용이 있어야 하고 증언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증언할 내용이 있고 상대에게 증거가 될 만큼 논리를 세워서 잘 발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증언을 해야 할 기회가 그에게 와야 합니다. 아무 기회도 없으면 증언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있어서 증인이 되지만,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그것은 증언자입니다.
둘째로, 여기에서 예수님 말씀에 ‘증인이 되라’ 할 때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너희라는 한 인간의 존재가 하나의 증거로서 나를 증거하는 것이 되어야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증인, 곧 증거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증거하는 것이 증언이라면, 증인이란 그 사람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뿐 아니라 그 메시지와 더불어 그들이 이제부터 행해 나가는 행동 혹은 행위가 어떤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에서 하나의 증거를 늘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지 않고 말과 함께 그들의 행동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행동이란 무엇이냐 하면 사람의 도덕성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도덕성을 가지고 예수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도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굉장하고 성인(聖人)이라고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쳐다보고 예수님도 저렇게 생겼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완성해 보려고 한들 하나님이신 예수, 즉 절대적으로 완벽하고 이상적이고 전혀 빈틈이 없고 흠이 없는 예수를 표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작해야 사람과 사람 간의 정도의 차이가 남을 뿐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사람이 도덕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증인이 되려면 독특한 권능을 행사하는 데서, 즉 성신이 풍부히 내려 주시는 은사가 발휘되는 데서,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 경륜 안에서 각 사람을 이런 데 저런 데 쓰시는 그 은사로 그 나라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증인이 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빈곤하고 미약한 사람이라도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라도 주께서 잡아서 당신의 나라의 어떤 은사를 주셔서 그 부분에서 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시켜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으로 교회에 있는 여러분들은 하나하나가 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임무를 띠는 것이고 마땅히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말을 잘해서 그 언설(言說)을 가지고 남에게 예수님을 충분히 증언하지 못하더라도 여러분의 생활이나 어떤 목표를 향해서 전진하는 것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살고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것으로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목표를 향해서 확실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나아갈 때, 그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목표이고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의 길이고 그 거룩한 나라 안에서 예수님께서 쓰시려고 하는 부분을 담당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충분히 증거가 되는 것이고 또 누구나 그것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김홍전, “내 증인이 되리라” 51-53쪽 (굵은 글씨는 본 블로그의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