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이 올라온 원인 (그리고 우리의 구원)
할아버지 생신을 맞아 어머니는 삼계탕을 상에 올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삼계탕이 상에 올라온 원인(cause) 즉 “무엇 때문에 삼계탕이 여기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구분해 생각할 수 있음을 말했다:
- 재료원인 (material cause): 닭, 물, 인삼, 대추, 황기 등과 같은 재료를 가지고 삼계탕이 이루어졌다.
- 형식원인 (formal cause): 닭에 속을 채운뒤 물에 넣고 끓이는 일련의 요리법을 통해 삼계탕이 여기 놓이게 되었다.
- 동력원인 (efficient cause): 어머니께서 삼계탕을 만드셨다.
- 목적원인 (final cause): 할아버지 생신이 다가왔기 때문에 삼계탕이 올라온 것이다.
여기에 플라톤이 첨가한 수단원인을 첨가하면:
- 수단원인 (instrumental cause): 솥과 불이 있었기에 어머니께서 삼계탕 끓이실 수 있었다.
이상을 가지고 우리가 왜 구원을 받았는지를 생각해보자:
- 재료원인: 예수님의 공효 곧 그리스도께서 내 죄값을 십자가에서 대신 치루고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평생 완전히 지키심으로 부활 하셨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았다.
- 형식원인: 성신께서 나의 죄를 예수님께, 예수님의 순종을 나에게 전가하심으로 구원을 받았다.
- 동력원인: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예수님의 공효를 내게 입히심으로 내가 구원을 받았다.
- 목적원인: 내가 하나님의 자식이 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살도록,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을 받았다.
- 수단원인: 내가 복음 강설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강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우리 구원의 재료원인은 그리스도의 공효 하나 뿐이라는 것과, 그리스도의 공효는 그의 고난의 순종(passive obedience) 뿐만 아니라 태중에서 부터 율법 아래 나시어 평생 완전히 순종하신 율법의 순종(active obedience)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다.
그와는 달리 구원의 재료원인에 그리스도의 공효 외에 다른 것을 첨가하거나 혹은 그리스도의 공효 가운데 일부를 생략하는 것 모두 크게 봐서 율법주의라는 범주 아래 들어간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날 개신교인 천주교인 할 것 없이 소위 기독교인들 가운데 범람하는 가장 큰 오해 혹은 오류는 구원의 수단원인인 믿음을 재료원인 가운데 하나로 착각하는 것이다. 여기에 치우친 것을 특히 신율법주의라고 한다. 전통적인 율법주의는 구원의 목적원인인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을 재료원인 가운데 하나로 착각하여 예수님의 공로 뿐만 아니라 나의 순종까지 구원의 재료적 근거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와는 달리 반법주의는 구원의 목적원인에 하나님의 법은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부록: 로마 가톨릭 칭의론과의 비교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로마 교회는 자신들이 보는 구원의 원인 다섯가지를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 제 6회기, 제 7장 참조):
- 재료원인: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 형식원인: 성도의 성화(santification)를 통해 하나님 앞에 진정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심
- 동력원인: 하나님의 자비하심
- 목적원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고 영생
- 수단원인: 세례
이상과 같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칭의론과, 앞서 정리한 개혁파 칭의론의 차이는 재료원인, 형식원인, 수단원인에서 나타난다:
- 재료원인: 개혁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active obedience)까지 우리의 의롭다하심의 근거가 된다고 고백하나, 로마교회는 고난의 순종(passive obedience)만이 근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 형식원인: 개혁교회는 나의 순종이 아닌 예수님의 순종을 나에게 전가(imputation)하심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고백하나, 로마교회는 예수님의 의는 나에게 주입(infusion)되고 그것과 나의 순종이 합력(co-operate)하여 내가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 수단원인: 개혁교회는 오직 믿음만이 구원의 수단이라고 고백하나, 로마교회는 오직 세례만이 구원의 수단이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정리하면 개혁주의 칭의론의 성격으로 확실성, 동일성, 불변성을 꼽을 수 있다 (라틴: certitudo, aequalitas, inamissibilitas). 신자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기에 자기가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고, 그로써 자기 구원의 확실함을 또한 알 수 있다. 나의 신실함이 아닌 그리스도의 신실함이 전가되어 의롭다하심을 받는 만큼 모든 신자는 동일한 칭의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지상 생애를 통해 단번에 영원히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한 만큼 신자의 칭의는 영구히 확고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로마 가톨릭 칭의론의 성격은 불확실성, 차별성,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라틴: incertitudo, inaequalitas, amissibilitas). 신자가 주입 받은 그리스도의 의와 더불어 자기가 성실히 끝까지 잘 합력한 것을 근거로 온전히 의로워지는 것이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신자는 자기 칭의가 확실하다고 할 수 없다. 신자가 주입받은 그리스도의 의에 잘 합력하는 만큼 신자의 의롭다하심을 받는 정도가 커지는 것이기에 신자들마다 의로운 정도가 다르다. 만일 신실하게 합력하지 않고 죄를 지으면 처음 받은 칭의는 무효가 될 수 있으며, 적절한 보속(penance) 성례를 통해서만 다시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칭의의 가변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