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 (시편 1편)
지난 주 동네 지인들과의 성경 공부는 시편 1편을 놓고 하였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 있는 사람의 조건이 위와 같다면, 역사상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자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였던가.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고난 받던 그 순간 만큼은 형통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형통”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 목적한 바를 뜻대로 달성 하는 것이 진정한 형통 아닌가? 그랬을 때,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의 죄값을 치루고 흑암의 권세에서 빼내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는 그 순간에 이뤄지고 있었다. 그 악한 자는 그리스도가 나무에 달린 것을 보고 자기의 승리를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르나, 그리스도의 피가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던 그 순간이 바로 나의 죄 값이 하나 하나 치뤄지던 순간이다. 그리스도는 자기 목적을 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셨다. 이 사실을 더 묵상하고 싶다.
(덧글: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사망이 죽음을 맞이함”(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이라는 제목으로 쓴 존 오웬의 책이 있다. 소위 말하는 ‘제한속죄'(Actual Atonement)를 부인하는 것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하는지 쓴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