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칙령 (Cultural Mandate)
문화적 칙령의 의미
‘문화적 칙령'(cultural mandate)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창조 때 주신 책무 곧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세계를 이해하고 가꾸고 경영할 책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문화적 칙령이란 표현 자체는 클라스 스킬더(K. Schilder)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한 스킬더의 생각은 그의 책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에 상세히 나와 있다. 졸인은 그 소책자를 아직 읽어보지 못하였으나, 고재수(N.H. Gootjes)가 쓴 <스킬더의 ‘그리스도와 문화’>를 통해 축약된 내용을 접하였다 (성약출판사에서 출판한 <그리스도와 교회와 문화>에 수록되었음). 아래는 고재수의 글을 요약한 것인데, 졸인의 생각이 곳에 따라 가미되었음을 밝힌다.
문화적 칙령의 성경적 근거
스킬더는 ‘문화’에 해당하는 라틴어 cultura의 어원이 ‘경작하다’ 혹은 ‘가꾸다’는 뜻을 갖고 있는 colere라는 말에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문화적 칙령의 기초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는 하나님의 명령에 둔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순전하였으나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번성함에 따라 그들이 먹기 위한 곡식이—필연적으로 에덴 동산 밖에서—경작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구를 개발할 필요도 있었다. 문화적 발전의 기회가 태초의 사람에게 주어졌다.
문화적 칙령은 인류의 머리인 아담에게 주어진 것으로 그후 오는 모든 사람이 나누어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연을 경영할 책임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다.
문화적 칙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천상천하의 대권을 쥐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만물을 다스리시는지 알아야 할 것이며, 그에 대한 이해의 터 위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영역을 가꾸고 경영해야 한다.
문화적 칙령에 대한 반론
반론1: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류가 타락한 뒤에는 타락하기 전에 받은 명령도 취소 되는 것이 아닌가?
대답1: 시편 8편(6절)은 자연을 경영하기 위해 사람을 두신 창조 질서가 여전함을 밝힌다. 죄가 문화적 칙령을 바르게 수행할 사람의 능력을 오염시켰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책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반론2: 그리스도의 지상 대명령은 복음 전파가 아닌가?
대답2: 그리스도의 지상 대명령은 단순히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문화적 칙령을 바르게 수행할 능력을 잃은 죄인에게 새 생명을 주고, 성신의 힘주심을 따라 그 칙령을 (불완전하더라도) 새롭게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그를 둔다.
반론3: 인류가 자연을 정복하면 할수록 자연은 더 파괴되는 것은 아닌가?
대답3: 범죄 후 타락한 인류는 문화적 칙령을 바르게 수행할 능력을 잃고, 문화적 칙령에 오히려 어긋나는 ‘자연 파괴’를 행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문화적 칙령에 대한 불순종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그러한 자연 파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판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순리에 따라 세상을 경영하는 문화적 칙령에 대한 순종은 오히려 더 절실하다.
문화적 칙령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
첫째, 문화적 칙령은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 된다. 예술 뿐만 아니라 농사, 청소, 자녀 교육 등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말씀이 비추는 빛 아래 실행 되어야 한다. (활동 가운데는 아예 버려야 할 것도 있다.)
둘째, 우리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서 접근 되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상전을 섬기는 하인들에게도 필요함을 골로새서 3:22은 가르치고 있다.) 인류의 타락 후 노동에는 어려움이 따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으로서 그 노동이 가져올 결과(열매)를 바라보며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셋째, 교회의 장로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 구원 뿐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과 접촉하고 있음을 각성하고, 장로의 사명 역시 문화적 칙령과 연계하여 수행해야 한다.